소개글
송재 서재필 선생의 개화기와 일제강점기에 있어서의 독립운동에 관한 4P의 리포트입니다.
목차
서재필(松齋 徐載弼, Philip Jaisohn)의 개화독립활동과 세 번의 좌절
1. 들어가며 - 출생과 성장, 개화파와의 만남 (1864-1883)
2. 첫 번째 좌절의 시기 - 갑신정변의 실패와 미국 망명 (1884-1895)
(1) 갑신정변의 실패
(2) 미국에서의 새로운 삶 - 사대부 서재필에서 미국인 의사 Philip Jaisohn으로
3. 두 번째 좌절의 시기 - 독립신문 창간과 독립협회 활동 (1895-1898)
(1) 제1차 귀국
(2) 갑신정변의 실패를 교훈으로 - 민중계몽 운동
(3) <독립>의 의미에 관한 논의
4. 세 번째 좌절의 시기 - 미국에서의 독립운동 활동 (1898-1945)
(1) 2차 渡美와 의사, 사업가로서의 활동
(2) 민족자결론, 3.1운동과 세 번째 시도와 좌절 - 한인연합대회 개최와 외교독립활동
5. 맺음말
본문내용
1. 들어가며 - 출생과 성장, 개화파와의 만남 (1864-1883)
서재필 선생은 1864.1.7 외갓집이 있던 전남 동복군(현재 보성군)에서 동복군수 서광언의 4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이후 선생은 자식이 없던 7촌 숙부인 서광하의 양자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양모인 서광하의 부인은 안동 김씨 가문인 권세가 김온순의 딸이었고 그 동생인 김성근은 서울에서 판서직에 올라 있었기에, 총명하다는 평가를 받던 선생은 7세 되던 해에 서울로 올라가 외숙부의 집에서 공부하였습니다.
이후 1882년 19세 때 과거 별시 병과에 최연소로 합격하여, 사대부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선생은 서울에서 생활하던 도중 일찍부터, 먼 친척 되는 서광범(1859-1897)을 통하여 급진 개화파의 수장인 김옥균(1851-1894)을 만나게 되었고, 이는 그의 앞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진심으로 김옥균의 생각을 믿고 존경하였던 그는, 김옥균의 권유에 따라 1883.5 일본의 도야마(戶山)육군소년학교에 입학하여 1년 2월여의 일본 유학생활을 하였고, 당시 일본체류 중이던 김옥균과 지속적으로 만났습니다.
2. 첫 번째 좌절의 시기 - 갑신정변의 실패와 미국 망명 (1884-1895)
(1) 갑신정변의 실패
개화파는 임오군란 수습 과정의 대원군 납치 등 청의 태도에 대해 분개하고 있었는데 한편 淸은 임오군란 후의 불평등조약인 朝淸商民水陸貿易章程(1882) 전문에 조선을 청나라의 <속방>으로 표기하였으며, 서울에 주둔한 청군의 행패도 극심하였습니다
참고 자료
강만길, 고쳐 쓴 한국근대사, 창작과비평사, 2000
한국프레스센터, 한국신문 100주년기념 특별전, 서재필과 독립신문, 한국프레스센터, 1996
이택휘 외 5인 공저, 서재필, 민음사, 1993
이정식, 구한말의 개혁 독립투사 서재필,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3
서재필기념회, 서재필과 그 시대, 서재필기념회, 2003
홍선표, 「서재필의 독립운동(1919-1922) 연구」, 독립기념관 홈페이지, 1993
(http://www.i815.or.kr//media_data/thesis/1993/19930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