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언론인 리영희에 관한 연구를 다룬 리포트입니다.
목차
1. 머리말
2. 리영희의 성장과정과 언론활동 - 저서『대화』를 중심으로
1) 성장과정
2) 주요 언론활동
3. 리영희의 언론에 관한 인식과 시각
4. 언론인 리영희 : 그에 대한 시선과 평가
5. 맺음말
본문내용
2. 리영희의 성장과정과 언론활동 - 저서『대화』를 중심으로
1) 성장과정
리영희는 1929년 평안북도 운산군 북진에서 태어났다. 운산군은 ‘금 채굴량이 세계 1,2위를 타투는 운산금광이 있는 곳으로 이조시대 경(京)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이라 고관대작, 명문서도가들은 어차피 이 변경에 정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민 모두가 직업적, 사회적, 정치적 차등이 없는 평등사회였다. 또 평안도에서는 남녀 칠세 부동석 같은 차별이나 문벌차등도 모르고 살았다고 한다. 또한, 평안도는 국제 교역과 상업의 발전으로 사회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자립적인 중산층이 상당히 두터웠다.
리영희의 아버지는 구한말에 의주에 설립된 농림학교를 나와, 평북 운산군 북진에서 근무하다 리영희가 다섯 살 되던 해 평안북도 삭주군 대관으로 전근을 가게 되어 이남으로 내려오기 전까지 살았다. 대관은 다른 지역에 비해 생활수준이 높았는데, 이를 전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리영희가 소학교 4학년 때인 1939년 당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수풍댐 발전소를 건설하기 시작해 수풍발전소가 완성되자, 면의 가정마다 전기가 들어왔다고 한다. 이러한 배경은 훗날 리영희의 의식과 사상에도 영양을 미치게 되는데 리영희는 이를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나는 이 같은 사상적, 사회적 현실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소년시절부터 평등사상과 사회적 해방이 몸에 배어 있었던 것으로 생각해요. 이것이 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훗날 진보적 이념을 갖게 되는 원초적 요인이겠지요.
소학교 때 학업이 우수하여 늘 1,2등을 다투던 리영희는 경성 공립 공업학교에 입학한다. 경성 공립 공업 고등학교는 이른바 내선공학이라고 해서 한 반에 일본인 30명 조선인 10명 정도로 입학했고, 당시 중학교의 국어(일본어)교육은, 일본의 고 문학까지 다루었기 때문에 일본인 지식인들과 거의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일본어의 읽기, 쓰기, 말하기가 완벽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 때의 일본어 실력은 리영희가 해방 후, 일본어 서적과 논문, 자료들을 통해 연구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참고 자료
강준만(2001), 대중매체 이론과 사상, 서울: 개마고원
강준만(2004), 한국현대사의 길잡이-리영희, 서울: 개마고원
김만수(2003), 리영희 살아있는 신화-인물과 사상연구, 서울: 나남
리영희, 임헌영 공동 저 (2005), 대화-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서울: 한길사
리영희(2000), 동굴 속의 독백, 서울: 나남
리영희(1998), 스핑크스의 코, 서울: 까치
박정호(1998), 지식의 세계- 21세기를 향한 지적 순례 1. 사회와 역사, 서울: 동녘
최진섭(2000), 한국언론의 미국관, 서울: 살림터
《한겨레21》, 《고대신문》, 《문화일보》, 《한국 브리태니커 세계연감》,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