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수용소에서
- 최초 등록일
- 2007.10.21
- 최종 저작일
- 20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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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죽음의 수용소에서
를 읽고 쓴 서평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위에서 이러한 끊임없이 분쟁을 하고 있는 자신의 자식들을 내려다보는 하느님과 마호멧은 도대체 어떤 심정일까? 지금 내 머릿속에는 양편에 서서 서로 자기편이 이기기를 응원하고 있는 두 분의 모습이 그려진다. 애처롭게 희생되는 어린 생명들과 고통에 시달리는 여인들과 노인들……, 끝이 보이지 않는 폭력과 복수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해외 토픽’란의 기사와 뉴스 장면을 보면 나오는 것은 한숨밖에 없기에 괜스레 위에 계신 두 분에게 이 모든 책임을 묻고 싶어지곤 한다. 도대체 당신들을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그들의 後人들은 과연 윗 분들이 펼치신 성스런(?) 말씀을 조금이나마 실천하고 있는 꼴인 것인지……, 심히 의심스럽다. 만약 이 모든 것 또한 신의 뜻(인샬라?)이라면…, 그네들의 신은 너무나도 잔인하다. 왜 그들은 서로의 신앙을 존중해 주지 못하고, 그 신앙을 물려받은 그네들의 땅에 갈등의 뿌리를 내리게 하고 있는지……. 왜 서로를 포옹할 수 없는 것인지…….
어느 성인이건, 어떠한 종교에서건 사랑과 자비를 부르짖지만……, 저렇게 누구하나 중재의 길을 터놓을 묘책과 대책이 안서는 이팔, 두 양국을 보고 있노라면 기독교건 이슬람교건 다 우스워 보인다.
아! 어쩌다 보니 무슨 국제 정세에 관한 견해만 늘어놓은 꼴이 되었다. 그래도 한 장은 채웠군….
이 책의 저자 빅터 프랭클은 니체를 참 좋아하는 것 같다. 특히 니체의 말,
“살아야 할 이유를 아는 사람은 거의 어떠한 상태에서도 견뎌 낼 수 있다.”
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진정,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위의 이 말 한 구절로 모든 내용이 모아지고 있는 듯 하다. 이 책의 중심 사상이 아닌가. 살아야 할 이유를 안다면 그는 삶의 의미를 찾게되고 그리고……, 또 하루하루를 기분좋게 살아갈 수 있다는…….
앞의 1부는 꽤 숙연한(?) 마음으로 읽었다. 유태인들이 겪어야만 했던 고통들은 이미 다른 여러 경로를 통하여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서 그의 글에서 그다지 새로운, 내가 알지 못했던 뜻밖의 사실은 없었지만 작가가 직접 겪었던 체험을 통해서 순간순간 느꼈던 감정들을 풀어내고 있는 그의 글을 읽고 있으려니 또 다른 감동이 다가왔다. 즉, 그의 글에서는 가식적인 면을 찾아볼 수 없었다. 진솔하고 담담하게, 마치 맛으로 따지자면 참 담백한 맛이었다. 어떤 조미료도 가하지 않은 듯한……. 그렇기에 더욱 나의 미각에 신선하게 다가온 것이 아닌가 한다. 직접 체험을 한 당시의 감정들을 풀어놓은 글이기에 감히 무어라 評할 수 없기도 하다. 그와 같은 고통을 이해할 수조차 없는 내가 어떻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의 체험담을 읽으면서 계속된 생각이지만, 만약 나의 경우였다면 아마 초반에 생을 마쳤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는 끝까지 버틸 힘이 없어보였다. 이 글에 펼쳐진 상황에서라면 차라리 죽음이 그 모든 고통을 끝내는 유일함이라고 생각했을 듯 싶다.
난 내 자신을 참 나약한 존재라고 항상 생각했다. 내가 강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가끔 TV에서 방영되는 동물들의 삶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더라도 육식동물이건 초식동물이건 간에 만약 내가 동물로 태어났다면 아마 어릴 적에 잡아먹히거나 생존경쟁에서 탈락될 듯 싶었다. 강자만이 살아남는 자연에 적응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인간으로 태어났기에 지금까지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렇듯 나는 나의 생존경쟁지수를 참 낮게 평가한다.
이 책의 앞부분쯤에 나온 글이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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