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 전성시대 명나라의 사계
- 최초 등록일
- 2007.10.22
- 최종 저작일
- 20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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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국 명대의 상업과 문화를 잘 표현한 쾌락의 혼돈이라는 서적의 일부 요약본
목차
Ⅰ.서 론
Ⅱ.겨울
전기(1368~1450)
Ⅲ.봄
(중기 1450~1550)
Ⅳ.여름 후기
(1550~1644)
Ⅴ.가을
금령(1642~1644)
본문내용
Ⅰ.서 론
장타오는 후광사람으로 많은 후이저우 상인들의 고향인 서 현의 지현을 지냈고 <<서 현지>>를 편찬 서 현의 상업풍속에 대한 비판자이자 우리에게 명조의 부침을 안내해 줄 길잡이이다 . 그의 눈에 왕조의 전반기는 분별있는 질서와 안정된 삶 그 자체였다. 하지만 상업으로 인한 부의 축적과 인간의 탐욕으로 소박한 농경사회를 통합해주던 도덕률은 설자리를 잃게 된다. 장타오는 왕조의 안온한 겨울의 안정성은 투기적인 상업에 자리를 빼앗겼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장타오가 이처럼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여기는 명대 상업사회의 배경은 어디서 온 것일까?
홍무제가 백성의 이동을 제한한 데는 농작물의 생산을 늘리려는 경제적 목적이 있었고 이 정책은 효과를 보았다. 하지만 농작물의 생산이 늘어나자 잉여농작물을 거래할 수 있게 되었고 잉여농작물이 정기적으로 유통되면서 전적으로 상업을 목적으로 한 작물의 재배가 생겨났다. 동시에 군수품을 공급하고 관원들의 이동을 위한 교통통신 수단에 홍무제가 많은 투자를 한 결과 일상용품의 유통까지 용이하게 만들 정도로 인프라가 개선되었다. 상선은 정부의 세수 물자를 실어 나르는 배와 같은 운하를 통해 이동했으며 상인들은 정부가 역전에 이용하는 길을 따라 여행할 수 있었다. 그들은 심지어 관에서 발행한 똑같은 지도를 들고 다녔다. 국가가 사람과 상품, 사상과 풍속이 움직일 수 있도록 밀어주었고 시장이 끌어당김으로써 그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상업화는 홍무제가 구상한 국가가 지배하는 통신체계와 국가의 지원 하에 이루어지는 자급자족 경제에서 방향을 돌린 것이라기보다는 그 결과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장타오는 오로지 명조를 생각하며 명조의 부흥과 쇠락을 계절의 변화에 비유해서 묘사했다.
특이하게도 겨울을 안정적인 명조의 전기로 보고 중기(봄), 후기(여름)의 세 기간은 임의로 각각 세기의 중반에서 시작하여 다음 세기의 중반에 끝난다.
장타오는 살아서 명조의 멸망을 보지는 않았지만 스스로가 말세를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참고 자료
쾌락의 혼돈 중국 명대의 상업과 문화
티모시 브룩 | 강인황 외 | 이산 | 2005년 01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