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의 의의와 그 특징
- 최초 등록일
- 2007.10.25
- 최종 저작일
- 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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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부적은 인류가 생겨나고 원시종교가 발생했을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선사시대에는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주로 짐승의 뼈나 돌, 조개, 머리카락, 나무뿌리, 보석 등 자연물을 그대로 이용하다 시대가 내려오면서 점차 조형성이 가미되고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졌다. 또한 생산활동이 활발해지고 인구가 증가하여 부적의 수요가 급증됨에 따라 빠른 시간에 제작할 수 있는 부적판의 사용이 활발해졌다.
조선시대 우리 조상들의 가장 큰 바램은 이차공덕(二次功德)과 왕생극락(往生極樂)이었다. 즉, 살아서 공덕을 쌓아 사후 극락세계에 가기를 염원했고, 수복강령(壽福康寧)•부귀다남(富貴多男) 즉 오래 살고 자식을 많이 낳고 복을 많이 받아 행복해지기를 기원하였다.
때문에 부적의 사용이 일반화되는데 전통 의학서인 허준의 『동의보감(東醫寶鑑)』에 아기를 빨리 낳을 수 있도록 하는 최생부(催生符)가 실려 있고,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궁중이나 사대부 집안에 정월 초하룻날, 세화(歲畵)를 벽에 걸거나 문을 지키는 신장을 그린 문배도(門排圖)를 그려 붙여 액(厄)이 물러가기를 빌었다고 하여 여러 형태의 주술행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이러한 부적은 그냥 그리거나 찍는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청정한 마음으로 주문 같은 일정한 의식을 행한 후에야 그 주술적 기능을 다 한다고 믿었다. 때문에 조상들은 목욕을 하고 제물을 마련하는 등 지극한 정성을 다하여 부적을 제작하였다
목차
1. 부적이란
2. 부적의 역사
3. 부적의 종류
4. 부적판
본문내용
부적은 인류가 생겨나고 원시종교가 발생했을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선사시대에는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주로 짐승의 뼈나 돌, 조개, 머리카락, 나무뿌리, 보석 등 자연물을 그대로 이용하다 시대가 내려오면서 점차 조형성이 가미되고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졌다. 또한 생산활동이 활발해지고 인구가 증가하여 부적의 수요가 급증됨에 따라 빠른 시간에 제작할 수 있는 부적판의 사용이 활발해졌다.
조선시대 우리 조상들의 가장 큰 바램은 이차공덕(二次功德)과 왕생극락(往生極樂)이었다. 즉, 살아서 공덕을 쌓아 사후 극락세계에 가기를 염원했고, 수복강령(壽福康寧)•부귀다남(富貴多男) 즉 오래 살고 자식을 많이 낳고 복을 많이 받아 행복해지기를 기원하였다.
때문에 부적의 사용이 일반화되는데 전통 의학서인 허준의 『동의보감(東醫寶鑑)』에 아기를 빨리 낳을 수 있도록 하는 최생부(催生符)가 실려 있고,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궁중이나 사대부 집안에 정월 초하룻날, 세화(歲畵)를 벽에 걸거나 문을 지키는 신장을 그린 문배도(門排圖)를 그려 붙여 액(厄)이 물러가기를 빌었다고 하여 여러 형태의 주술행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이러한 부적은 그냥 그리거나 찍는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청정한 마음으로 주문 같은 일정한 의식을 행한 후에야 그 주술적 기능을 다 한다고 믿었다. 때문에 조상들은 목욕을 하고 제물을 마련하는 등 지극한 정성을 다하여 부적을 제작하였다
부적을 쓸 때 사용되는 붉은색 경명주사(鏡明朱沙)는 유화수은(流化水銀)의 일종으로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이나 포박자 선인편에서 신약의 약재 일종으로 다루고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