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진단학회의 성격
- 최초 등록일
- 2007.10.29
- 최종 저작일
- 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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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제시대의 진단학회의 성격에 대한 리포트
목차
Ⅰ. 서론
Ⅱ. 진단학회의 설립배경
Ⅲ. 진단학회의 연구활동
Ⅲ-1 회원구성과 학문성격
Ⅲ-2 진단학보의 간행
Ⅳ. 역사인식 및 역사연구 방법론
Ⅴ.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진단학회는 국내 및 주변 지역에 대한 역사·언어·문학 등 인문학에 관한 연구를 목적으로 1934년 5월에 설립한 순수 민간 학술단체이다. 한국 학자의 힘으로 연구하고, 그 결과를 국어로 발표하려는 의도 하에 창립되었고, 기관지인 계간 《진단학보(震檀學報)》를 14집까지 계속 발행하면서, 해외 각 학회와 학술잡지를 교환할 정도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각계의 호응이 열렬해지면서 일제의 탄압도 심해져 결국 1942년 일단 자진해산 형식으로 해체하고 학보 간행도 중단되었다. 이러한 진단학회가 어떠한 배경을 가지고 설립되었으며 어떠한 의의를 가지는지 좀 더 자세히 알아보았다.
Ⅱ. 진단학회의 설립배경
1930년대 초의 韓國史硏究는 植民主義史觀,民族主義史觀,社會經濟史觀의 세가지 조류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 중 식민주의사관은 일본이 한반도를 합병한 이후에 內鮮一體論, 日鮮同祖論 등을 주장하면서 한국의 歷史를 日本史의 일부분으로 전락시키려 하였다. 이러한 사관에 입각한 일본인들의 한국사 연구는 일본문화의 源流를 규명한다는 원칙하에 이루어진 것으로 韓國文化의 천명이라는 목적은 도외시 되었고,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격하시키려 하는데 집중되고 있었다. 또한 이러한 사관을 합리시키려는 목적으로 문화고증에 의한 보다 근대적인 역사연구의 방법을 적용시키고 있었다.
이에대한 반응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 民族主義史學과 社會經濟史學이었으나, 이들의 학문적 특성에도 한계점이 있었다. 민족주의사학은 일제식민지하의 독립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역사적으로 뒷받침하려는 의도하에 韓國史 발전의 근본이 되는 것을 정신적인 면에서 찾으려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의 연구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이었다. 또한 한국사의 근원을 민족으로 파악하고 있는데, 이 민족을 사회로서 보다는 개인과 같은 단일한 것으로 생각하여 민족의 구성원은 한결같이 한 가지 근본에 의하여 움직여지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한편 社會經濟史觀은 유물사관에 기초를 두고 역사가 일원론적인 역사법칙에 의하여 지배된다는 생각 밑에서 한국사를 체계화 하려 한 것이다. 또한 이들은 사회적인 면에서 계급의 존재를 중요시하여 그들이 설정한 각 사회발전분야에서 각기 독특한 계급이 대립관계를 지니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참고 자료
문은정,1988,「일제하 진단학회에 대한 연구:진단학보(1934~1945)를 중심으로」,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이홍자,2006,「일제시대의 진단학회의 성격」,서울시립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http://blog.naver.com/99kuki/120007409022 <이병도-진단학회는 민족애의 발로인가>
http://cafe.naver.com/maisan/9811 <진단학회-진안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