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아메리카 영화와 음악
- 최초 등록일
- 2007.10.31
- 최종 저작일
- 20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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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라틴아메리카의 영화와 음악에 대한 교양을 듣는 대학생을 위한 요약서
목차
중남미 영화의 역사
1. 시련의 계절 그리고 황금시대
중남미 영화의 올바른 이해
중남미 각국의 영화(황금기를 중심으로)
멕시코
볼리비아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본문내용
중남미 영화의 역사
1. 시련의 계절 그리고 황금시대
초창기
라틴아메리카대륙의 최초 장편영화가 만들어진때는( 아르헨티나인 Mario Gallo에 의해 제작된 El Fusilamiento de Dorrego(도래고의 銃殺)) 1908년이었지만 프랑스인 Gabriel Veyre과 브라질인 Mario Peix으로 부터 처음 영화가 도입된 때는 뤼미에르 형제의 첫 영화인 ` 열차의 도착 `이 상영된 바로 그해 1896년이었다.
그후 1896년에 영화는 Rio de Janeiro(7월 8일), Montevideo(7월 18일), Buenos Aires(7월 18일), La ciudad de Mexico(8월 14일), Santiago de Chile(8월 25일), La ciudad de Guatemala(9월 26일), 1897년에는 Lima(1월 2일), Habana(1월 24일), Maracaibo(1월 28일), La Paz(6월 21일), Bogota(9월 1일)에 거의 동시적으로 라틴아메리카 전지역에 소개되었다.
그러나. 라틴아메리카의 초창기 영화는(무성영화) 유럽과 북미와는 다른 성장배경과 성격을 가진다. 그것은 유럽이나 북미의 영화가 자연발생적이고 민간인에 의해 주도되었다면 라틴아메리카의 영화는 불행히도(?) 다분히 지배계층의 의도적인 계산에 의해 시작되었고 발전되었다.
그것은 이후 라틴아메리카에서 제작되는 모든 영화가 겪어야 할 수 많은 시련과 어려움의(무자비한 검열과 삭제, 상영금지, 필름압수등의) 例徵이었다. 다른 대륙의 영화와 비슷하게 라틴아메리카의 초기 영화들은 뉴스릴, 선전영화같은 저널리즘이 대부분이었지만 그것을 정통 다큐멘터리의 경지에 이르게한 혁혁한 공로를 세운 사람들은 멕시코의 Salvador Toscano, Enrique Rosas, 아르헨티나의 Federico Valle, 브라질의 Paulino Botelho, Gilberto Rossi, 콜롬비아의 Arturo Acevedo등이다.
특히 멕시코의 Salvador Toscano는 멕시코 혁명의 와중에서 멕시코의 현실과 고통받는 민중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보도해 혁명의 당위성을 전세계에 알리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또한 다른 대중매체들( 특히 연극, 오페라와 무용)과 영화와의 결합이 빈번히 이루어졌는데 아르헨티나의 Eugene Py에 의한 탱고의 기록물 촬영, 브라질의 Francisco Serrador에 의한 Zarzuela(輕喜歌劇), Sainete(喜劇), 오페라 등의 공연물 기록들은(유럽의 Film d`art양식에 영향을 받은) 당시의 대표적인 사건들이었다.
1차대전 전부터 급속히 신장되어온 라틴아메리카의 경제는 유럽과 북미가 경제공황 및 국내외적인 혼란의 와중에 처한 틈을 타 Rio de Janeiro, Buenos Aires, Habana, Sao Paulo, La ciudad de Mexico같은 도시를 국제상업도시로 성장시키며 이러한 도시를 거점으로 영화제작붐이 일기 시작하였다. 그때부터 브라질의 El Pathe, 멕시코의 El Salon Rojo, 쿠바의 Polytema등의 대규모의 민간 映畵社가 생겨났고. 또한 이시기의 영화수입도 급격히 증가한다. 그것은 라틴아메리카에서 영화가 하나의 거대한 산업으로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는 것을 증거하는것이며 동시에 대중이 소비자로서 위치가 결정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편 영화가 양적으로 발전됨과 더불어 생산되어지는 영화들의 소비촉진을 위한 홍보와 광고의 역할을 직.간접으로 담당한 영화 저널리즘도 이시기에 급격히 증가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