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유럽의 좌익과 우익
- 최초 등록일
- 2007.11.21
- 최종 저작일
- 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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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좋습닌다
목차
◎ 스페인 내전에서 좌익과 우익의 국제적인 대립
◎ 독일국민은 히틀러를 왜 지지하였나?
◎ 나치즘과 소련공산정권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수단을 사용하였는가?
① 이데올로기의 제시
② 이데올로기의 실천
③ 대중 심리의 공략
④ 히틀러, 레닌의 카리스마
◎레닌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란 무엇인가?
본문내용
◎ 스페인 내전에서 좌익과 우익의 국제적인 대립
스페인 내전은 1936년 2월 스페인 총선 당시 좌파 세력과 공화주의자들의 연합체인 인민천선이 선거에서 승리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우익세력은 군부를 중심으로 왕당파, 파시스트당, 가톨릭교회가 연합하여 1936년 7월 쿠테타를 일으킴으로써 내전을 촉발시켰다. 이후 스페인은 공화파와 반공화파로 나뉘어 3년동안 치열한 유혈의 내전을 겪었다. 그러나 독일 나지 세력과 이탈리아의 지원을 받은 군부의 군사력 앞에 공화파는 패배하고 말았다. 그 과정에서 피카소의 그림으로 유명한 ‘게리니카 학살‘ 등 수많은 양민 학살이 자행되어 60만 명이 내전 중에 목숨을 잃었다. 내전 후 공화파라는 이유로 10만 여명이 총살되기도 했다. 내전에서 승리한 프랑코는 1975년 사망할 때까지 36년 동안 국가 원수이자 총통, 군 총사령관으로서 권력을 행사하였다. 스페인 내란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스페인 역사와 정치가 양극화한 결과로 일어났다. 내란의 양측은 구성세력부터 달랐다. 국가주의자는 스페인의 로마 가톨릭교회, 군부세력, 토지소유자, 기업가 등이었고 공화파는 도시 노동자, 농업 노동자, 교육받은 중산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구성세력의 차이는 정치적으로 파시스트적 팔랑헤당과 호전적 무정부주의라는 극단적이고 격렬한 형태로 표출되었다. 이 양극단 세력 사이에는 군주주의와 보수주의를 비롯해 자유주의, 그리고 소련 지도자 요시프 스탈린과 그의 최대 라이벌 레온 트로츠키의 추종자로 양분되어 있는 소규모 공산주의 운동을 포함한 사회주의가 있었다. 내란이 본격화하자 암살과 폭력행위가 일상적으로 일어났다. 1934년에는 발렌시아와 사라고사에서 총파업이 발생했고,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서도 전투가 벌어졌으며, 아스투리아스에서는 광부들의 유혈폭동이 일어나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이 이끄는 군대의 의해 진압되었다. 공화국 정부의 계소된 위기는, 1936년 2월 16일 선거에서 좌익정당의 지지와 우익 및 나머지 중도파 정당의 반대를 받던 인민전선이 정권을 잡음으로써 그 절정에 이르렀다. 1936년 7월 17일 스페인 전역의 수비대 주둔지역에서 정확히 계획된 군사봉기가 시작되었다. 7월21일까지 반란군은 스페인령 모로코, 카나리아 제도, 발레아레스 제도, 과다르라마 산맥, 에브로스, 산탄데르, 북쪽 해안의 바스크 지방, 북동쪽의 카달루냐 지방만을 점령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공화파 군대는 세비야, 그라나다, 코르도바 같은 안달루시아의 몇몇 대도시를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반란군 봉기를 진압했다. 국가주의자와 공화파 모두는 각각의 영토를 조직하고 반대세력을 진압해 나갔다. 양측에서 최소한 5만 명 이상이 처형, 살해, 암살되었다는 사실은 스페인 내란이 엄청난 감정폭발을 일으켰음을 보여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