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와인
- 최초 등록일
- 2007.11.27
- 최종 저작일
- 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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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칠레와인입니다.
목차
1.칠레 와인의 역사
2.칠레 와인의 품질
3.칠레의 주요 포도 품종
4.칠레의 주요 와인 생산지
5.칠레의 주요 와인 생산자
6.칠레와 유럽 와인과 비교
본문내용
1. 칠레 와인 생산 역사
남미에선 옛 잉카 영토를 중심으로 16세기 중반부터 와인의 생산이 확산되었다.
베드로 데 발디비아의 부하였던 까라반떼스는 1548년 포도의 종자를 소지하고 들어가 칠레에서 최초의 포도 경작과 와인의 생산을 가능하게 했다. 그 후 선교사들의 주도 하에 아르헨티나를 위시한 남미의 전 지역에서도 제례용 와인 생산되기 시작하여 포르투갈의 브라질 정복기에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비옥한 토양과 알맞은 기후 조건에 뒷받침 된 신대륙의 와인 산업은 비약적으로 성장했고, 결국 본국인 스페인의 포도주 생산자들의 위상을 위협하게 되었다. 신대륙과의 와인 무역량이 감소하자 그들은 당시 국왕이 펠리페 2세에게 압력을 행사하여 신대륙의 와인의 생산에 대한 통제권을 발동시키도록 한다. 이러한 통제권은 주기적으로 행사되어 1654년에 이르러 스페인 국왕은 식민지에서 새로운 포도나무의 식목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며 기존의 포도밭에 세금을 부과하는 칙령을 발표하게 된다.
이러한 본국의 통제 탓에 식민지의 와인 산업은 중남미의 역내 교역에 힘입어 간신히 명맥만을 유지해 왔다. 즉, 교역에 있어 스페인을 위시한 유럽 국가들과 상호 보완성이 없고 오히려 충돌한다는 사실은 신대륙에서 포도주의 생산이 억제된 원인이 되었다. 이런 배경은 역설적으로 포도와 와인 산업이 중남미의 단일 작물화 되지 않은 긍정적 결과를 낳았다고도 볼 수 있다. 물론 포도주의 대량 생산을 저해했던 요인은 본국의 견제뿐만이 아니었다. 협소한 역내 시장, 제한된 자본과 기술, 영세한 양조장, 철저히 노동력에 의존한 생산 활동, 창고 시설의 미비 등이 와인 생산을 저해해 온 다른 요인들이었다. 더욱이 보호주의 무역 장벽이 철폐된 식민 시대의 말기부터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산 포도주들이 물밀듯이 몰려오기 시작하면서 신대륙의 와인 산업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