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시인 `김광균`에 대한 전반적인 연구 내용입니다.
시인의 생애와 시 세계관, 대표작품 감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감상 수준도 높고 체계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어 적극 추천할만한 자료입니다.
목차
1. 김광균의 생애
2. 김광균의 시 세계관
3. 김광균의 작품 감상
본문내용
1. 김광균의 생애
김광균은 1913년 음력 12월 23일 경기도 개성 동부에서 아버지 김창훈(본관 태천)과 어머니 한수복(본관 청주) 사이에서 3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가난한 선비의 집안이었으나 그의 아버지가 결혼 후 부인의 의견에 따라 무역계에 무신하였다. 그리하여 광균은 어린 시절 넉넉한 가정에서 고생 없이 자랐다. 손현미,「김광균 시 연구」,(영남대학교 교육대학원), 2004, p.9~10 그러나 그의 유년시절의 넉넉함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의 나이 12살에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였던 것이다. 1924년 겨울, 개성시내 남대문 앞 네거리에서 포목 도배상을 경영하던 아버지께서 중풍으로 사망하였다. 김학동, 이민호, 「김광균 전집」,(국학자료원), 2002, p.531 그 때 아버지 연세는 48세였고, 유언 한마디 남기지 않으셨다. 갑자기 당한 일이라 어린 김광균이 심리적으로 심한 충격을 받았으리라는 것을 쉽게 짐작해 볼 수 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그의 집안은 급속도로 기울어졌다. 아버지가 장사 하면서 진 부채로 인해 채권자에게 집까지 넘어가고, 그 뿐만 아니라 채권단은 자식이 후일 자라서 아버지의 부채를 갚겠다는 문서를 써내라는 요구까지 하였으나 그의 어머니가 추운 겨울, 그것은 안 된다며 닷새를 애원하여 아버지의 부채를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불망기’라는 글을 받아냈다. 그들은 살던 집을 채권단에게 넘겨주고 얼마동안 셋방살이를 하다가 그의 외가가 함경도 성진을 떠나고 난 뒤 그 집을 빌려 얼마간 살기로 했다. 광균이 14살 되던 유년시절에 그는 또 다른 죽음의 슬픔을 맞이하게 된다. 그건 바로 누님이 요절한 것이다. 아버지와 누님의 죽음이 김광균을 비애의 시인으로 만들게 된다.
그는 14세 때 개성 시내에 있는 원정 소학교를 마치고 개성송도 상업학교에 입학하였고, 개성에 머물던 학창 시절부터 시 습작을 하기 시작하였다. 개성 상업학교 학생 몇 명과 김재선, 김창지, 김영일 등이 모여서 ‘연애사’라는 동호인을 만든다. 동인들은 매월 만나 당시 중앙에서 간행되던 월간 문예지나 일간지 등에 실린 작품들을 읽고 합평회를 갖는 한편, 동인지 「유성」을 간행하기 까지 이른다. 이 무렵 김광균은 여러 일간지와 월간지에 많은 시작품(<녯 생각>등)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그 ‘연애사’는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다. 그가 상업학교를 졸업한 1931년 10월에 경성 고무 공업 주식회사 군산지사로 입사하게 되자, 곧 그 모임은 흐지부지 해산되었던 것이다.
참고 자료
1)김경현, 「한국현대시문학대계13 김광균 장만영 편」(지식산업사), 1982
2)김병호, 「한국 근대시 연구: 주제의식을 중심으로」(중앙대 대학원), 2002
3)김윤식, 『고교생과 함께하는 김윤식 교수의 시 특강』, (한국문학사)
4)김춘수, 박진환 공저, 『한국의 문제시․ 명시 해설과 감상』, (자유지성사), 1988
5)김태진, 「한국현대시작가연구1 김광균시연구」, (보고사), 1996
6)김학동, 이민호, 「김광균 전집」,(국학자료원), 2002
7)김태형, 정희성, 『현대시의 이해와 감상1』, (문원각), 2003
8)손현미,「김광균 시 연구」,(영남대학교 교육대학원), 2004
9)정순희, 「김광균 시의 이미지 연구」, (한남대 교육대학원),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