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당정치론
- 최초 등록일
- 2007.12.08
- 최종 저작일
- 20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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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사학-붕당정치론
목차
Ⅰ. 들어가며
Ⅱ. 본론
1. 붕당(朋黨)
2. 붕당정치의 발생
3. 붕당의 대립 과정
4. 탕평책의 실시
본문내용
Ⅰ. 들어가며
한민족은 독특한 역사적, 문화적, 지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우리 민족은 단일민족이며 단일혈연민족이다. 또한 이러한 동일성을 지닌 민족이 하나의 반도내에 살며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비록 3국 시대나 고려 등을 거쳐오며 혼합과 혼란이 있었지만 우리 역사는 비교적 단일성의 기본을 이어왔으며 조선시대로 오면서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게 됨으로써 비로소 그 틀을 완성시켰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가장 가까울 수 있는 조선 후기의 역사를 들춰보면 흔히 망국병으로까지 일컬어지는 붕당정치의 멍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정말 붕당정치를 비롯한 당쟁은 조선사회를 망하게 한 원인이었는가?
Ⅱ. 본론
1. 붕당(朋黨)
지방에서 성장한 사림파는 15세기 말 이후 중앙에 진출하기 시작하여 훈구파로부터의 심한 탄압을 이겨내고, 16세기 중엽 선조 즉위 뒤 중앙 정계를 장악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서인과 동인으로 분파 되었다.
근본적 원인은 당시 완전히 청산되지 않은 훈구 정치를 어떤 속도와 방법으로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후배 세대와 선배 세대의 입장 차이에 있었다. 또한 사회적으로는 중앙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역량과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크게 늘어남에 따라 관직을 둘러싼 경쟁이 집단화되어 나타난 현상이었다.
중국과 조선의 군주체제에서는 신료가 붕당을 결집하는 것은 범죄로 인식되었으며 『경국대전』에는 거기에 대한 처벌 규정이 들어 있다. 그러나 중국 송대의 신유학에서는 구양수와 주희 등에 의해 군자끼리 모인 군자당이 소인의 집단을 누르고 정치를 주도하여야 한다는 논리가 제시되고 조선의 사림파에게도 그것이 계승되었다.
특히, 학문과 정치가 결합된 상황에서 붕당은 학통의 차이와 정치적 입지에 따라 많은 분기를 보이면서 정치 세력 결집과 권력 행사에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서인은 이이와 성혼이 중심이 되었으며, 동인은 주로 이황·조식·서경덕의 제자로 구성되었다.
참고 자료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0」
- 한국사특강편찬위원회 1990 「사화와 붕당정치」 서울대학교출판부
- 한국역사연구회 1992 「정치세력과 정치운영」 『한국역사』 역사비평사
- 이성무 1999 「조선후기 당쟁사에 대한 제설의 검토」 일조각
- 이성무 2000 「조선시대당쟁사 1」 동방미디어
- 박광용 1998 「영조와 정조의 나라」 푸른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