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과 그의 문학
- 최초 등록일
- 2007.12.10
- 최종 저작일
- 20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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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5세 때까지 외가(外家)에서 자라던 그는 아버지가 장원급제하고 벼슬길에 오르자 서울로 이사해서 아버지에게서 문자(文字)를 배웠다. 소학기(小學期)에 들어서서는 이윤경(李潤慶), 이준경(李浚慶) 형제, 이항(李恒)등과 죽마고우로 자라면서 학업을 닦았다. 아버지가 단천군수(端川郡守)로 외임(外任)에 나아가자 잠시 거기에서 지내면서 경전자사(經典子史)와 천문(天文), 지리(地理), 의방(醫方), 궁마(弓馬), 진법(陣法)등 남아가 갖추어야 할 모든 지식과 재능을 익혔고, 특히 자기의 정신력과 담력을 기르느라 두 손에 물그릇을 받쳐들고 밤을 새기도 하였다
목차
Ⅰ. 생애
Ⅱ. 역사적 배경과 출처관
1. 16세기의 역사적 현실
2. 출처관
Ⅲ. 문학에 비친 그의 사상
1. 사상의 양면적 성격
2. 자연과의 합일
3. 인간의 사회적 대립
4. 낙도정신과 그 불철저성
5. 애민의식
6. 실천정신
Ⅳ. 마무리
본문내용
Ⅰ. 생애
5세 때까지 외가(外家)에서 자라던 그는 아버지가 장원급제하고 벼슬길에 오르자 서울로 이사해서 아버지에게서 문자(文字)를 배웠다. 소학기(小學期)에 들어서서는 이윤경(李潤慶), 이준경(李浚慶) 형제, 이항(李恒)등과 죽마고우로 자라면서 학업을 닦았다. 아버지가 단천군수(端川郡守)로 외임(外任)에 나아가자 잠시 거기에서 지내면서 경전자사(經典子史)와 천문(天文), 지리(地理), 의방(醫方), 궁마(弓馬), 진법(陣法)등 남아가 갖추어야 할 모든 지식과 재능을 익혔고, 특히 자기의 정신력과 담력을 기르느라 두 손에 물그릇을 받쳐들고 밤을 새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단순한 의기(意氣)는 18세 때 서울로 돌아와 성수침(成守琛)과 성운(成運) 종형제(從兄弟)를 만남으로써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남명은 이들의 영향(影響)을 받아 이왕의 짙었던 속기(俗氣)를 떨쳐 버리고 보다 높고 넓고 깊은 인생(人生)의 경지(境地)를 추구하기 시작했으며 유학서 외에 노장(老莊)과 불서(佛書)를 섭렵하기도 하였다.
20세에 생원 진사 양과(生員 進士 兩科)에 급제했다. 남명은 고문(古文) 에 능하여 시문(時文)이 아닌 고문으로 시권(詩卷)을 써서 시관(試官)들을 놀라게 하였다. 이 때 기묘사화로 조광조가 죽고 숙부(叔父)인 언경가(彦慶家)가 가문이 망하는 화(禍)를 입자 이를 슬퍼하고 시국을 한탄한 그는 벼슬을 단념하게 되었다.
25세때 산사(山寺)에 가서 성리대전(性理大典)을 읽다가 허노재(許魯齋)가 말한 "이윤(伊尹)의 뜻을 뜻으로 하고 안연(顔淵)의 학(學)을 학(學)으로 하 여, 벼슬에 나가면 유익(有益)한 일을 하고, 야(野)에 처해서는 지조(志操)를 지킨다. 대장부라면 마땅히 같아야 할 것이니, 벼슬에 나아가서도 하는 일이 없고, 산림에 처(處)해서 지킨 것이 없으면 뜻한 것, 배운 것을 무엇에 쓸 것인가. "한 구절을 읽다가 홀연히 깨달은 바 있어 다시 육경사자(六經四子) 및 주정장주(周程張朱) 周子, 程子, 張子, 朱子의 글
에 전념했다.
26세 때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고향인 삼가(三嘉)에 장사지내고, 가난과 싸우면서 민생들의 고초(苦楚)가 어떤 것인가를 뼈저리게 체험했다. 남명사상 속에 항상 민생을 잊지 못한 것은 이 때 생민(生民)의 어려움을 실제로 겪어 보았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