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진과 백거이
- 최초 등록일
- 2007.12.10
- 최종 저작일
- 20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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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국문헌을 바탕으로 충실히 작성한 보고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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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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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당대 詩歌발전사에서 예컨대 이백과 두보, 고적 唐 시인(?707~ 765). 자는 達夫. 벼슬은 감찰어사 절도사를 지냈으며, 잠참과 더불어 邊境의 풍물을 읊었다.
과 잠참, 왕유와 맹호연 등과 마찬가지로, 원진과 백거이도 당시에 이름을 나란히 하였으며 唐代 두보이후 가장 걸출한 현실주의 시인이 되었다.
원진(779~831)의 자는 미지요, 하남낙양인이다. 백거이(772~846)의 자는 낙천, 晩年의 호는 향산거사이며 산서태원인이다. 원진과 백거이의 생활경험은 서로 비슷하면서도 또 매우 큰 차이가 있다. 그들은 둘 다 일찍이 가정환경들이 비교적 빈곤하였으며, 사회생활과 백성의 질고에 대하여 비교적 많은 접촉과 이해가 있었다.
원진과 백거이 두 사람은 명성을 이룬 것도 이른 시기였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세상에 쓰이려는 태도를 가지고 벼슬길에 나아갔다. 원진은 일찍이 시를 지어 뜻을 밝히길 ‘현달함은 많은 백성 億兆 : ①아주 많은 數. ②많은 백성(=億兆蒼生).
을 구제하고, 빈궁함은 작은 것 毫末 : ①털끝. ②아주 작은 일이나 적은 양.
이라도 구제한다. 사람을 구제하는 데는 크고 작음이 없으니, 헛되이 혼자 먹고 살진 않겠다.’ (酬別致用) 하였다. 백거이도 명확히 드러내었다. ‘현달함은 천하를 아울러 구제하고 빈궁함은 단지 한 몸이라도 이롭게 한다.’ ‘내 뜻은 세상을 아울러 구제하는데 있으나 행동은 내 몸만 이롭게 하는데 있구나.’ (與元九書)
원진과 백거이는 唐번성기에서 쇠퇴기로 바뀌는 시기에 있었다. 사회 정치 경제모순이 날로 심화되는 현실에 직면하여, 원진과 백거이는 벼슬길에 진입한 후, 예리한 기상 銳氣 : 성질이 굳세어 남에게 지지 아니하는 날카로운 기운.
과 비교적 진보한 정치경향에 의거하여 백성을 동정하는 측면에 서서, 어두운 현실의 잘못된 실상을 들춰내고 환관(임금측근) ․ 권귀들과 투쟁을 전개했다. 원진은 감찰어사에 재임 중 탐관을 탄핵함으로 인해 환관에게 노여움을 사서 환관의 능욕을 받고 원화 오년(810년)에 강릉사조로 좌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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