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역사]전후 일본의 사회,정치적 변화에 따른 수상의 리더십
- 최초 등록일
- 2007.12.14
- 최종 저작일
- 20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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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전후일본의 역대 수상과 그의 리더십에 관해 배우는 수업에서
기말리포트로 제출한 것입니다.
1945년 종전부터 최근(고이즈미)까지 일본의 사회적, 정치적
변화에 따른 역대 수상들의 리더십 변화 양상을 서술했습니다.
목차
1. 종전 직후 연합국 지배 하에서(1945~1954)
2. 55년 체제의 성립과 정치적 혼란(1955~1960)
3. 경제성장의 시기 : 보수세력의 전성시대(1960~1980년대 초)
4. 경제성장 둔화와 보수세력의 붕괴(1980년대 후반~1993)
5. 잃어버린 10년과 우경화 (1990~)
6. 평가와 사견
본문내용
1. 종전 직후 연합국 지배 하에서(1945~1954)
2차 세계대전의 종전 직후, 일본은 패전국으로서 맥아더의 GHQ 이하 보호국 신세에 이르게 된다. GHQ는 황족 출신이라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하기 쉽고, 게다가 일본의 무장 해제라는 연합국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히가시쿠니 나루히코(본명 히가시쿠니노미야)를 1945년 8월, 초대 수상으로 임명한다. 연합국의 생각으로 그는 육군 대장으로 무장해제에 적절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히가시쿠니 내각은 연합국이 요구하는 대로 항복 문서 조인, 무장해제․군부 해체 등 패전 처리 작업에 나섰으나, 비민주적인 단속이 문제가 되어 54일 만에 GHQ로부터 총사직당했다. 이후 연합국은 친서구적 성향을 가진 시데하라 기주로를 후임으로 임명, 군부에 저항하였다. GHQ의 점령정책에 충실히 따라 전후 헌법, 특히 제 9조항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1946년에는 자유당 총재 하토야마 이치로의 공직 추방에 따라 요시다 시게루가 후임 총재가 되어, 제 1차 요시다 내각을 조직하고 새로운 전후 헌법을 공포한다(1947). 그러나 첫 번째 내각 발족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치른 총선거에서 사회당이 제1당이 됨에 따라 사회당 당수인 카타야마 테츠가 보수와의 연립 정권을 성립하나, 전후의 사회․경제적 사정이 워낙 혼란스러웠던 터라 사회당의 지지율은 급락하고, 단기간에 사임하고 만다. 이후 아시다 히토시가 취임하나 GHQ를 비롯한 요시다, 시데하라 등의 반대로 그리 큰 힘을 기르진 못한다. 아시다 내각은 연합국의 정책을 따라 각종 법률안을 통과시키는 데 그치고 만다. 이후 GHQ 내부의 분열로 인해 확대된 쇼와전공 사건 등의 의혹으로 아시다 내각은 7개월만에 총사직당하게 된다. 이후 요시다 시게루가 재임하여 1948년부터 54년까지 총 5번의 최장기 내각을 성립하게 된다. 한국전쟁의 발발로 안보 강화촉진의 여론에 따라, 요시다는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및 미․일 안전보장조약을 체결한다. 조선의옥사건에서 자신의 측근들을 보호하기 위해 지휘권을 발동하여 심한 비판을 받고, 결국 사임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