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전후, 일본 정치에 대해
- 최초 등록일
- 2007.12.15
- 최종 저작일
- 20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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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본정치-패전후에 일본 정치에 대한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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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제국주의의 노선을 걸으며, 동북아시아 및 동남아시아를 식민지로 거닐던 일본은 제2차 대전인 태평양전쟁에서 미국과 연합군에 의해 전쟁에 패전하고 만다. 패전국으로 일본은 그동안 유지해 왔단 제국주의적 정치가 무너져 갔으며, 점령군에 의한 정치적인 제약을 받게 된다. 이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일본의 정부가 어떤 식으로 구성되어 어떤 정치적인 정책을 행하였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1945년 5월 독일의 무조건항복 후에도 일본의 군부가 중심으로 구성되어진 익찬의회와 군부에서는 본토결전을 부르짖었다. 이 익찬의회는 익찬선거를 통해 결성되었는데, 당시 군부가 정부를 주도적으로 했기에 군부에서 추천한 사람들에게는 자금을 원조하면서 의회를 군부 중심의 의회로 만들었다. 몇몇의 군부이외에 사람들이 당선되기도 했지만 이들은 전후에는 보수적인 성격을 띠었다. 나가사키가 미군에 의해 함락되고 공습과 함포 사격에 의한 피해가 속출하는 상황에도 군부 중심의 정부는 전쟁을 종결하지 않은 채 항전을 했다. 이는 소련을 중개로 하는 협상에 기대를 걸어서였지만, 1945년 2월에 이루어진 얄타회담으로 소련은 대일 참전을 밀약했기에 움직일 수 없었고, 같은 해 7월에는 포츠담선언에서 미․영․중 3국은 일본의 비군사화, 민주화, 경제활동의 제한, 영토의 제한, 점령과 철수 등 13개의 항목을 만들었으며, 이를 본 정부를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 정부가 포츠담선언을 수락하기 전에 쇼와 천왕의 참석 하에 열린 어전회의에서는 고위 관료들이 포츠담선언의 수락과 철저한 항전을 두고 논쟁이 심했지만, 결국 천왕이 포츠담선언을 수락하는 입장의 대신들에 말을 들어 수락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 선언에 대해 국체호지(천왕제유지)를 고집하면서 많은 시간을 낭비하게 되었고, 전쟁을 혐오하는 분위기에 관료들이 늘어나면서 결국 천왕은 항복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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