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건국시기의 대외관계, 남북극 시대의 발해의 대외 관계, 7세기 삼국통일전쟁과 동아시아 국제질서
- 최초 등록일
- 2007.12.15
- 최종 저작일
- 20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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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우리나라의 역사(3국)와 동아시아에의 관계에 대해 쓴 레포트 입니다.
전공수업에서 에이뿔 받은 레포트 이며 비교적 간단하게 썼습니다.
도움 받으실 분들이 있었으면 좋겠고, 위 내용 똑같이 내기보다 내용을 추가하거나 삭제한다면 자신만의 레포트가 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목차
▶고구려 건국시기의 대외관계
▶남북극 시대의 발해의 대외 관계
▶7세기 삼국통일전쟁과 동아시아 국제질서
본문내용
▶고구려 건국시기의 대외관계
고구려는 일찍이 기마민족의 문화를 받아들여 졸본 지방에서 일어나 동방 침입의 요로인 통구로 옮긴 뒤 낙랑군과 임둔군의 교통로를 단절시키는 등 한족과의 투쟁과정에서 강대해졌다. 고구려는 한반도와 중국의 사이 즉, 한반도의 북쪽 중국의 동쪽에 있었다. 이러한 위치로 인해 외부의 정세 변화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다. 한나라가 크게 발전한 시기인 기원전 2세기 무제의 통치시기에 대외정복사업에 주력했다. 또 기원전 129년 대규모의 원정대를 보내 흉노를 제압하기도 했다. 즉 10여년에 걸쳐 제압에 성공한 것이다. 한의 예상과는 달리 장기전이 되었고 결국 고조선을 멸망시키는데 성공해 한사군을 설치하기에 이른다. 그 이듬해에 현토군을 설치하게 된다. 동명왕이 고구려를 건국하고 고조선이 멸망하고 한나라의 세력이 확장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설치된 곳이 낙랑이었다.
압록강 중류유역에는 독특한 문화가 발견되기도 했는데 적석총 등이 그 예이다. 적석총이란 돌을 무더기로 쌓아올린 무덤으로서 이 지역 주민들이 중국문화와 멸도로 독특한 형태의 문화를 갖고 있었다. 고조선의 통제에서 벗어난 세력은 후에 현도군 설치에 강력히 저항한 토착세력이었다. 무제 사앙 이후 부패한 관리들이 정권을 잡아 지배질서가 문란해 집에 따라 한나라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에 토착인들의 저항은 강력해 졌다. 졸본지역 즉 환인지역은 부여에서 주몽집단 (부여계 이주민 집단)이 내려온 곳이었다. 그곳에서 토착세력을 아우르고 고구려를 세운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한나라의 내부정세가 혼란스러웠고 그로 인해 토착인 세력을 강력하게 제압하지 못하고 현토군을 몰아낸 것이다. 만약 고구려가 중국사라면 독립적으로 나라를 세우는 것에 찬성하지 않았을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