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실에 관한 레포트
- 최초 등록일
- 2007.12.18
- 최종 저작일
- 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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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자기가 존경하는 인물을 주제로 쓴 레포트 입니다.
저는 조선시대 학자 장영실에 대해 썼습니다.
목차
Ⅰ.서론
Ⅱ.본론
Ⅲ.결론
본문내용
과학혁명을 이끈 천재적인 학자 장영실
Ⅰ.서론
조선 최고의 과학자 장영실. 그는 나라가 바르게 서려면 백성들의 생활이 안정되어야 한다고 믿고, 농업의 발달과 생산성을 향상하기 위해 고심하였던 세종대왕의 뜻에 맞는 총명함과 뛰어난 천재성을 가진 인물이었다. 장영실은 백성들을 위한 조선의 과학 기술을 발전시킴으로써 국가 경영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경제 발전과 민생 안정에 절대적인 공헌을 한 1등 공신이었다. 그러나 장영실의 대단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의 대한 사료는 얼마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그도 그럴것이 장영실은 기생인 어머니의 신분에 따라 천민으로 태어났고 또 그 당시의 과학기술은 높이 평가 받지 못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불우한 시대적 상황에서 어떻게 장영실이 큰 꿈을 이루어 나갔는가에 호기심이 들었고 그에 대한 책을 읽고 글을 써 보았다.
Ⅱ.본론
먼저 장영실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많은 과학기구를 발명했다는 것 뿐이었다. 그래서 장영실이 어떤 업적을 이루었는지부터 알아보았다.
1432년 천문의 제작, 감독
1433년 금속활자 갑인자 주조, 지휘감독
1441년 우량계인 측우기, 수표 발명
본관 아산(牙山). 기녀 소생으로 동래현(東萊縣)의 관노(官奴) 출신. 과학적 재능이 있어 제련(製鍊) ·축성(築城) ·농기구 ·무기 등의 수리에 뛰어나서 1423년(세종 5) 왕의 특명으로 발탁, 상의원(尙衣院) 별좌가 되면서 노예의 신분을 벗었다. 그 후 행사직(行司直)이 되고 1432년 중추원사 이천(李狀)을 도와 간의대(簡儀臺) 제작에 착수하고 각종 천문의(天文儀) 제작을 감독하였다. 1433년 호군(護軍)에 오르고 혼천의(渾天儀) 제작에 착수하여 1년 만에 완성하고 이듬해 동활자(銅活字)인 경자자(庚子字)의 결함을 보완한 금속활자 갑인자(甲寅字)의 주조를 지휘감독하였으며, 한국 최초의 물시계인 보루각(報漏閣)의 자격루(自擊漏)를 만들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