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달이야기
- 최초 등록일
- 2007.12.19
- 최종 저작일
- 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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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온달이야기 에 대한 발제자료
목차
1. 사실 + 설화
2 . 온달은 정말 바보인가???
Ⅱ. 평강 공주 이야기
Ⅲ. 우리조의 새로운견해
본문내용
- 평강공주가 국마를 사게 한다는 부분은 고주몽의 설화에도 나오는 것으로,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지만 대체로 허구
- 한국의 설화 가운데 신분의 장벽을 뛰어넘어 백년가약을 맺은 일화중 하나
ex) 서동요 마를 팔면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서동이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를 사모하여 거짓 노래를 퍼뜨렸고 그로 말미암아 궁에서 쫓겨난 공주와 결혼하다는 백제 무왕과 관련된 서동 설화가 있다. 서동 설화에도 <온달전>에서처럼 ‘황금’이 등장한다. 공주가 궁에서 갖고 나온 황금을 팔아 살림살이를 마련코자 하였을 때, 서동은 비로소 집 곁에 쌓아둔 돌덩이가 황금임을 알게 된다. 공주에게서 황금의 가치를 깨우친 서동은 많은 황금을 진평왕에게 보내 든든한 신임을 얻고, 뒤에 백제 무왕이 되었다.
- 두 사람의 결혼 자체가 ‘파격적’이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두 사람의 결혼은 세상 사람들의 화젯거리가 되었고, 사람들의 잎에 오르내리는 과정에 각색되어 ‘울보’공주가 궁을 나와 가난한 ‘바보’ 온달과 결혼했다는 식으로 바뀌어갔다는 추측인 것이다. 되고 있다. 그런데 온달에게서는 그에 해당하는 점을 찾을 수가 있는가? 온달이 훗날 용감한 무사로 활약한 사실을 고려하면, 그가 지능이 낮고 멍청한 위인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누구나 상식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온달이 바보로 일컬어진 까닭은, 그가 공주와 결혼할 수 없는 낮은 신분이었다는 사실을 설화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신분 제도가 엄격했던 삼국 시대에는 동일 신분 내에서만 결혼이 가능하였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신라의 경우 진골과 육두품 이하의 신분은 서로 결혼할 수 없었다. 장보고의 딸을 왕비로 맞이하려던 문성왕의 계획이 귀족들의 반대로 물거품이 되고 만 것은 너무도 유명한 사실이다. 같은 진골이라도 신라 왕족과 피정복국가인 가야 왕족 후손과의 결혼이 매우 어려웠을 정도였다.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과 신라 왕족인 만명과의 결혼이나, 김유신의 누이동생 문희와 신라 왕족 김춘추의 결혼이 모두 어렵게 성사된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참고 자료
윤채근, 『소설적 주체, 그 탄생과 전변』, 월인, 1999.
A. T. Jersild, Child Psychology, New York, Prentice-Hall, 1954.
참고논문
임재해, 「온달형설화의 유형적 성격과 부녀갈등」,『민족설화의 논리와 의식』, 지식산업사, 1992.
윤경수, 「온달전의 현대적 고찰」,『연민학지』
이상구, 「<온달전>의 갈등구조와 소설사적 의의」
진재교,「<<삼국사기·열전>> 분석의 한 시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