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조선 초기의 대마도 정벌에 관한 자료입니다. 이종무 장군의 활동을 중심으로 만들었습니다.
구매후 후회는 안하실 겁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배경
1. 조선 초기의 왜구
2. 征伐의 필요성 대두
Ⅲ. 발단과 준비과정
Ⅳ. 기해동정
Ⅴ. 의의
Ⅵ. 맺음말
※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머리말
고려 말부터 기승을 부리던 왜구의 침입은 조선 초까지 계속된다. 이러한 왜구의 침입에 대한 피해도 막심하게 되는데 이처럼 조선 초의 대일관계는 왜구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왜구의 근거지이며 경유지였던 對馬島와의 관계는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왜구문제는 조선 초기 대일정책의 근간이 되었다.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조선정부는 막부의 장군에게 왜구의 금지를 요청하기도 하였으며, 피로인의 송환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평화적인 방법은 대마도의 식량난으로 인해 왜구의 침입을 근절하는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었다. 따라서 조선은 군비의 증강을 통한 군사적인 노력까지 병행하게 된다.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의 對馬島 征伐은 총 3회였는데, 그 중 그 규모와 효과가 가장 크게 나타난 것은 세종 원년(1419년)에 단행한 李從茂의 대마도 정벌이다. 이를 己亥東征이라고 하며 일본 역사에서는 오에이의 외구(오에이노 와코, 應永の外寇)라고 한다. 이처럼 이종무의 대마도 정벌은 한반도에서 왜구를 근절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그 후 대일관계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따라서 본 고에서는 3차례의 정벌 중 가장 큰 규모와 효과를 가져온 이종무의 대마도 정벌만을 다루도록 하겠다. 조선 초기 왜구의 잦은 침입에 따른 정벌의 필요성과 그 계기, 그리고 정벌의 준비와 실행에 옮기기까지의 노력을 살펴보고, 정벌의 과정과 결과 및 의의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Ⅱ.배경
1. 조선 초기의 왜구
왜구에 대해서 그 기록이 처음 보이는 것은 1223년(고려고종 10년)의「고려사」에서 ‘倭寇金州’라 하여 왜구가 금주(김해)에 침구한 사실에서 처음으로 보인다. 조선 초기에도 왜구의 침입은 계속되어 1392年(태조 원년)부터 1408年(태종 8년)까지 17년간에 걸쳐 117회나 침입하였다. 이러한 왜구의 침입은 상당기간 지속되었는데 상세한 내용은 다음 표와 같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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