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고통
- 최초 등록일
- 2008.01.02
- 최종 저작일
- 2007.12
- 4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할인쿠폰받기](/images/v4/document/ico_det_coupon.gif)
소개글
타인의 고통에 대한 글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1994년 퓰리처상 수상자 케빈 카터를 아는가? 소녀가 죽기만을 기다리는 독수리라는 작품으로 그는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수상 후 작가는 수많은 비난을 받게 된다. 사진을 먼저 찍고 독수리를 쫒아냈다고 하는 것이 주된 비난의 요지였다. 그리고 결국 3개월 뒤 1994년 7월 28일에 친구와 가족 앞으로 쓴 편지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소녀의 고통을 이해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비난이 과연 진실이었을까? 그 소녀의 고통만 알았다고 했을 뿐 작가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닌가?
2002년 월드컵이 한창이던 때, 고 신효순, 심미선 학생이 미군 장갑차에 깔려 사망했다. 월드컵에 쏠려있는 대중의 관심을 어떻게 하면 돌리고, 촛불집회에 동참하게 할까? 미군의 폭력을 고발하는 길거리 사진전시회를 열었다. 전시된 사진 속에는 잔혹하게 살해된 고 윤금이씨 사진이 포함돼 있었다. 국부에 우산이 꽂힌 채 죽은 그녀의 모습은 눈 뜨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두 학생들의 죽은 현장 사진도 구토를 일으킬 정도로 끔찍했다. “자, 보십시오. 이것이 미군이 저지른 만행입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기에 이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은 없을 정도로, 몇몇 사진들은 극도로 자극적이었다.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평화운동을 고민할까, 아니면 복수를? 그도 아니면 너무나 참혹하여 고개를 돌려 버릴까? 나에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며 한도의 한숨을 쉴까?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충격요법을 사용한다. 충격적인 사진이나 자극적인 문구를 쓰는데 별 주저함이 없다. 문제의식을 느낀다 해도 지금 당장 대중의 즉각적인 반응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이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정말 그럴까. 잔혹한 이미지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을 할까, 고통 받는 사람들의 이미지를 보면서 “가슴 아프다”고 느낀다면, 그 연민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당시 행동연대 활동가들은 잔혹한 사진을 전시하는 것은 죽은 자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일반 시민들에게 잔혹한 이미지들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 그 자체가 바로 폭력이라며 문제제기를 했다.
참고 자료
윤정은, 『슬픔은 흘러야 한다 - 106일간 이라크 희망의 기록』(서울:즐거운상상, 2005), 29p
손봉호, 『고통 받는 인간』(서울:서울대학교출판부,1995) 22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