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문학과예술]모네와세잔의삶에서 배워야할 점
- 최초 등록일
- 2008.01.14
- 최종 저작일
- 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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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프랑스 문학과 예술 레포트입니다.
A+ 받았구요
도서관에서 책 많이 찾아 읽어보고 썼답니다.
도움되시길
목차
1. 처음
2. 중간
1) 인상주의의 선구자 모네
2) 미래를 보여 준 세잔
3. 끝
본문내용
인상주의가 태동하는 19세기 중엽 세계 미술의 중심지는 프랑스 파리였고, 모든 화가들의 꿈은 관전(官展)인 살롱전(le Salon de Paris)에 작품을 출품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2년에 한 번씩 열리다 나중에는 매년 열리게 됐던 살롱전은 화가들이 자신을 세상에 알릴 수 있고 그림을 팔 수 있는 몇 안되는 기회 중 하나였다.
하지만 워낙 신청자가 많다보니 출품을 위해서는 심사위원들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했고, 국립 미술 아카데미와 과거의 수상자들로 구성되는 심사위원들은 워낙 보수적이어서 전통을 벗어난 모든 새로운 시도를 배척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네는 <풀밭위의 점심>를 내놨다가 보기 좋게 거절당하고 만다. 하지만 나폴레옹 3세는 살롱전 낙선자들의 반발을 무마하기위해 그들에게도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게 되고, 1863년에 열린 `낙선자 전시회(le Salon des refuses)`가 그것이다. 세잔느와 피사로를 비롯한 미래의 인상파 화가들이 이 낙선자 전시회에 참가한다. <풀밭위의 점심>이 엄청난 스캔들을 일으킨 것도 낙선자 전시회를 통해서이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부르주아지로 태어나 화가가 되면서부터 가난을 맛보게 된다. 물론 똑같이 화가의 길을 걸었어도 경제력이 튼튼했던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 드가, 마네 등은 가난한 동료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들은 인상주의 화가들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다. 경제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예술가로서 겪는 고충도 서로 이해하고 나누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의 작품은 철도의 발전과 공장에서 물감을 생산하게 된 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새로이 등장한 튜브 물감은 가지고 다니면서 작업하기에 확실히 편리했다. 따라서 숲속이든 도시든 어느 곳에서도 작업을 할 수가 있었다. 기차의 발달은 더욱 중요했다. 도시를 떠나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아니면 파리 근교로 쉽게 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모네 예경 바네사가 비올리, 로배르토 타서 2007.
화가들이 사랑한 파리 류승희 (주) 아트북스 2006.
모네 순간에서 영원으로 실비파탱 (주) 시공사 2003.
인상파 - 빛을 그리는 사람들 욜랑드 바이예글, 크리스티앙 모클레 성우 2000.
세잔 - 사과 하나로 시작된 현대 미술 미셸 오 (주)시공사 1997.
인상주의자 연인들 Meyers, Jeffrey 마음산책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