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사상사의 출발을 의미하는 `삼국유사`의 이해
- 최초 등록일
- 2008.01.23
- 최종 저작일
- 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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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역사학 - 일연의 생애와 삼국유사의 이해
목차
1. 일연의 생애
2. 일연 당시의 역사 상황
3. 편찬동기
4.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비교
5. 전체의 구조
6. 조목의 구성
7. 삼국유사의 한계
8. 삼국유사의 사학사적 위치
9. 그 외의 질문
본문내용
⑦ 삼국유사의 한계
⑴ 저자의 신분상의 문제점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이 사관이 아닌 승려의 신분이었다. 역사 전문가가 아닌 한 선승의 손으로 집필된 만큼 사료의 정리 측면에서 연대의 착오와 인용 기사의 소루한 점 등 직업적 책임성의 결여에서 나온 결함들이 가끔 있다. 그 일례로 분명히 오간이 아닌 범위에서 제 1편인 왕력에서만 보더라도 전한(前漢) 지황(地皇) 원년 “경진”이 “병진”으로 오기되었으며, 송(宋) 경평(景平) 원년은 “계해”인데 “계유”로 되었으며, 백제 무령왕(武寧王) 조의 융(隆)은 의자왕(義慈王)의 태자인데 고구려 보장왕(寶藏王)의 태자로 기술되는 등 이와 같은 착오는 다른 편에서도 가끔 발견된다.
⑵ 지역적인 한계와 종교적인 한계
그의 활동 범위가 주로 영남지방 일원이었다는 제약 때문에 불교중심 내지 신라중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취급 기사의 범위에서는 『삼국사기』의 그것보다도 더 심하게 신라의 사적에 편중하고 있다. 이 결함은 『삼국사기』와 함께 문헌의 제약으로부터 오는 공통된 원인이기도 하거니와 더욱이 저자는 경주 장산군 사람으로 그 생애의 대부분을 경상도 일원에서 시종하였으므로, 그의 관심이나 견문에서 오는 제약은 저절로 이 지역을 중심으로 한 자료에 편중함을 면치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저자가 자기 저서의 표제를 “삼국”으로 내세운 것도 어떤 과업으로부터 지정된 표제가 아닐 것이며, 삼국의 “유사” 자료에 대하여 그 어떤 균형을 고려해 볼 책임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내용은 그 자료 문헌의 제약을 별개 문제로 하더라도 저자의 취미나 편향된 지식에 기초하여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그 결과는 이 책이 오늘날에 와서도 때로는 신라 중심의 유사, 또는 불교 중심의 유사라는 평을 받게 된다.
⑶ 저자가 불교 승려라는 특징은 유교주의 역사관에서 해방될 수 있는 장점이 되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이 책의 절반을 불교 관계 “유사”로 채운 결함을 가져왔으며, 때로는 저자의 신앙심으로부터 나온 강한 주관에서 우리나라의 고유한 전래 설화를 불교 색채로 윤색함으로써 그 원형을 왜곡한 폐단도 없지 않다.
⑷ 이 책을 삼국의 역사 전반에 관한 역사서로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삼국의 불교사 전체를 포괄하거나 체계적으로 서술한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 이 책에 불교 관계 기사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불교사만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왕력, 기이편 등에서 서술하고 있는 일반사의 분량만 해도 거의 반에 가깝기 때문이다. 대부분 불교사 관계 기록으로 되어 있는 흥법편 이하의 서술만을 독립시켜 보더라도 체계적인 불교사라고 보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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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삼국유사의 종합적 해석 上』이범교, 민족사, 2005
『삼국유사의 종합적 연구』박진태 외, 박이정,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