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초기국가로서 십제의 형성
- 최초 등록일
- 2008.02.01
- 최종 저작일
- 20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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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백제가 십제라는 소국으로부터 시작했다는 내용의 리포트입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十濟의 건국세력
Ⅲ. 十濟의 건국시기
Ⅳ. 맺음말
본문내용
百濟에 대한 이해를 위해 선행되어야 할 작업은 당연히 백제의 형성에 대한 의문점의 해결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百濟의 기원은 十濟에서 찾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것은 백제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위해서 우선적으로 십제에 관한 이해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백제의 형성에 관한 의문점은 곧 십제에 대한 의문점과 직결된다. 이러한 중요성으로 인하여 십제에 대한 연구가 행해졌는데, 기존의 연구에는 몇가지 오류가 존재하고 있으며, 또한 그것들은 십제의 형성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주지 못하였다. 따라서, 본고를 통해 십제의 형성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를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우선, 백제 건국세력에 대한 기존연구의 내용을 알아보고 문제점을 밝혀보도록 하겠다. 지금까지의 견해를 보면 설화에 등장하는 溫祚와 沸流의 정치적인 실체를 옳게 파악하지 못한 것을 주목할 수 있는데, 여기서 온조와 비류의 관계를 혼동하고 있는 여러 견해들의 주장내용과 그 문제점을 알아보기로 한다.
먼저 李丙燾는 중국사서인 『周書』등에 나오는 시조 仇台說을 따라, 구태가 古爾王이라고 주장하며 고이왕이야말로 백제의 국가체제를 이룬 건국의 태조라고 하였다. 이에 온조와 비류가 남래하여 백제를 세웠다는 건국년대인 기원전 18년은 믿기 어렵다고 하며, 백제의 엄밀한 의미의 건국년대는 고이왕 27․28년(260․261)이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이병도의 연구는 백제 건국에 대한 그 후의 연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견해에는 문제가 있다. 고이왕대의 백제는 이미 정치적인 성장을 하여 대방군과의 전투에서 대방 태수를 전사시킬 정도의 국력을 갖고 있었는데, 이는 백제가 고이왕대에 갑자기 국가를 형성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이다. 그 이전에 이미 소국을 형성하였고 이후 성장하여 주변의 소국들을 병합하여 나간 것이 분명하며, 따라서 백제의 초기국가 형성은 십제라는 소국으로 이루어진 것이 분명하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