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이승만에게 국부의 자격이 있는가?
- 최초 등록일
- 2008.02.07
- 최종 저작일
- 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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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김구와 이승만의 비교를 통해 고찰해본 이승만이란 인물의 본 모습
목차
서론
본론
결론
본문내용
서론
일반적으로 자본주의를 근간으로 하여 성립된 근대 민족국가들의 사회형성과정은 매우 다양한 형태를 띄고 있다. 이는 각 나라들이 제각기 다른 역사와 환경을 통해 독자적인 사회 변화를 추구하며 그 과정에 있어서의 전형적인 틀을 허락하지 않은데서 기인한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안타깝게도 한국은 서구와 같은 자본주의 발달과 민족 국가 수립의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의 길로 들어선 일본에 의하여 그들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폭압적 지배와 수탈을 동반한 한반도에 대한 일제의 강점은 우리의 반만년 유구한 역사와 전통의 단절을 가져오고 말았다.
이렇듯 암울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국가와 민족이 처한 심각한 위기 상황을 타개하여 민족의 자주성을 회복하기 위한 목적으로 많은 이들이 민족의 독립을 위한 투쟁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김구와 이승만은 바로 이 시기에 무장투쟁과 외교력을 통해 독립을 쟁취하고자 힘쓴 공로로, 해방 이후 수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기억되고 추앙 받았던 대표적인 인사들로 꼽을 수 있다.
그러나 해방 이후와 독립을 위해 활동했다던 당시의 이승만의 행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과연 그를 일컬어 독립운동가라 할 수 있는지, 그 부분에 대해 강한 의문을 가져보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여기서는 두 사람에 대해 내려진 일단의 평가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의 피력과 함께, 이승만이란 인물에 대한 재평가의 필요성을 지적해보고자 한다.
본론
해방을 맞이한 사람들은 남녀와 유․무식을 가릴 것 없이 두 가지의 공통된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 첫째는 공평하게 사는 새 나라가 세워질 것이요, 둘째는 모든 친일세력에 대한 응분의 응징이었다. 1945년 12월 27일 미국․영국․소련이 결정한 5개년 신탁통치 실시가 발표되자마자 즉각 전국적으로 반탁운동이 격렬하게 일어났던 것은 첫 번째 기대가 무너지는 데 대한 민족적 자각의지의 표현이었음과 동시에, 또 다른 외세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민족적 결의가 응집된 외세배격 항거였다. 일본에게 억눌린 36년 간의 암흑의 세월에서 벗어난 해방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사람들 앞에 새롭게 다가온 5년 간의 신탁통치라는 것은 사람들에게 간판만 뒤바뀐 또 다른 식민체제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참고 자료
< 이승만의 삶과 꿈: 대통령이 되기까지, 유영익, 중앙일보사, 1996. >
< 이승만: 신화에 가린 인물, Oliver Robert T. 황정일, 건국대 출판부, 2002. >
< 이승만과 한국 독립운동, 고정휴, 연세대학교 출판부, 20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