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비교 - 세종대왕과 표트르 대제
- 최초 등록일
- 2008.02.22
- 최종 저작일
- 20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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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와 세종대왕의 인물 비교입니다
목차
※ 서 론
※ 본 론
- 경제적 측면에서의 비교
- 교육, 문화적 측면에서의 비교
- 표트르 대제와 세종대왕의 비교
※ 결 론
본문내용
교육, 문화적인 측면에 대해서 비교해 보자.
표트르 대제는 국가 봉직을 위해 적어도 어떤 최소한의 교육을 중시했고 그는 또한 1701년에 설립된 수학․항해 학교와 같은, 전문가들을 만들어낼 학교들을 장려했다. 초기에 세운 학교는 군사상의 필요에서 설립되어 산술, 기하, 지리, 항해술 등을 주로 가르치던 일종의 군사 전문학교였다. 표트르 대제의 보다 폭 넓은 계획에는 젠트리를 위한 의무교육과 러시아에서 학문을 발전, 계도, 완성시키기 위한 학술원(Academy of Sciences)의 창립이 포함되었다. 학술원은 그가 죽은 뒤 태어나게 되었다.
표트르 대제는 귀족들에게도 교육을 강요하여, 글을 깨우치는 것은 물론 해외로 보내 선진학문을 배우게 했다. 통치 후기에는 역사와 지리에 대한 연구도 장려하여 공공도서관, 박물관 등을 세웠는데, 이러한 기관들이 문화발전의 요람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였던 결과로 오늘날 러시아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높은 수준의 러시아 문화가 개화될 수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로서 대학의 전신이 된 제국 과학 아카데미의 설립을 준비하였던 사실을 지적할 수 있겠다. 또한 자신이 직접 러시아 최초의 신문을 편집하고, 문자도 쓰기 편하게 개량하였던 결과로 이 문자체계가 1917년 까지 통용되었다. 종래의 러시아 역법은 성서를 바탕으로 하여 추정한 천지창조의 순간부터 햇수를 세고 9월부터 새해가 시작되는 비과학적인 것이었는데, 표트르는 1700년 1월 1일을 기하여 새해를 축하하도록 명령함으로서 러시아의 달력을 율리우스 달력으로 대체하였다.
표트르 대제는 귀국과 더불어 반란자의 처형문제를 처리한 후 러시아 사람들의 생활 관습 가운데 ‘미개한 관습’으로 여겨지는 부분들을 ‘서유럽화’시키기 시작했다. 그 작업은 턱수염 깎기에 서 시작되었다. 러시아 정교를 신봉하는 러시아 사람들에게 있어, 턱수염은 종교적 신앙과 자기존경의 기본상징이었다. 표트르 대제의 아버지 알렉세이는 원하는 사람은 턱수염을 깎아도 좋다고 선언했지만 턱수염을 깎는 이는 거의 없었으며, 러시아인들은 턱수염을 깎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뿐만 아니라 불명예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참고 자료
러시아의 역사 I
김성수의 세종대왕
세종대왕 약사
표트르 대제의 업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