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이황 보고서
- 최초 등록일
- 2008.02.23
- 최종 저작일
- 20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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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황의 생애, 사상과 교육, 인간상과 이에 대한 나의 견해 제시
목차
서 론
1. 퇴계 이황의 생애
2. 퇴계의 사상과 교육
(1) 퇴계의 사상
(2) 퇴계의 교육
3. 퇴계의 인간상
결 론
- 참 고 문 헌
본문내용
서 론
퇴계 이황은 율곡 이이와 더불어 조선의 2대 성리학자로 손꼽힌다. 성균관 대사성 등의 고위 관직을 역임하는 동안에도 벼슬이나 물욕에 눈이 멀지 않고 오직 학문 정진을 위해 힘썼던 퇴계의 생애를 통해 그의 사상과 교육을 살펴보고, 그것이 우리에게 어떠한 교훈을 주는지 알아본다.
1. 퇴계 이황의 생애
퇴계의 성은 이(李), 이름은 황(滉), 자는 경호(景浩), 호는 퇴계(退溪) 혹은 도유퇴도 등이며, 관향은 진보이다. 그는 연산군 7년(1501) 음력 11월 25일에 경상도 예안현(지금의 안동군 도산명 온혜동)에서 진사 이치의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친이 진사였던 것으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양반이 지배하던 당시 사회에서 그도 신분상으로는 자신의 능력에 따라 장래가 보장되는 양반가문 출신이었다. 그렇다고 퇴계의 가정 환경이 유복하였던 것은 아니다. 그는 태어난지 불과 7개월 되던 때에 당시 40세의 장년이던 부친을 여의었다. 그로 말미암아 부친의 훈도를 받지 못하고 또 빈곤한 생활 속에서 자라게 되었다. 부친을 여의던 당시 맏형 한 분만 결혼하였을 뿐, 다른 형제는 모두 어려서 가족의 생계를 어머니가 홀로 농사와 누에치기로 이어 가야 할 형편이었다. 퇴계가 "나에게 영향을 가장 많이 준 분은 어머니"라 할만큼 어머니는 "과부의 자식은 몇 백배 더 조신해야 한다."는 엄한 가법을 세워 자녀를 교육하였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퇴계의 학문과 인격 형성에 모친의 영향이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34세에 대과에 급제하고 벼슬길에 나선 퇴계는 형식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퇴계의 관직은 그가 70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참고 자료
유정동, <퇴계의 생애와 사상>, 박영사, 1974
권오봉, <이퇴계의 실행유학>, 학사원, 1997
전두하, <퇴계사상연구>, 일지사, 1974
금장태, <퇴계의 삶과 철학>, 서울대 출판부,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