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이효석의 작품들 중 <돈>, <들>, <산>을 중심으로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자연의 의미에 대해 재분석 해보았다
목차
1. 서론
2. 이효석의 생애
3. 작품 소개
3.1 <돈>의 줄거리
3.2 <산>의 줄거리
3.3 <들>의 줄거리
4. 그를 힘들게 했던 것
4.1 비관적인 문명관
4.2 시대 상황의 압박
5. 현실로부터의 탈출
5.1 심미주의에의 귀의
5.2 이국정취에의 향수
5.3 자연에의 심취
5.3.1 ‘풍경’으로서의 자연과 미적 대상화
5.3.2 ‘자연’의 모순된 성격
5.3.2.1 단절의 공간이면서도 연결의 공간인 자연
5.3.2.2 자발적 선택의 공간이면서도 추방의 공간인 자연
5.3.3 자연의 일부로서의 인간, 자연과 성적충동의 상관관계
6.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서론
이제까지 이효석에 대한 논의는 편중되어 왔다. 특히 그의 대표작인 <메밀꽃 필 무렵>을 중심으로 연구 된 논의들은 이효석에 대한 편향된 시각을 보이기도 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심지어 ‘<메밀꽃 필 무렵>을 제외한 다른 작품들은 모두 수준미달’이라는 논의를 도출하기도 했다. 본고에서는 이효석의 작품들 중 <돈>, <들>, <산>을 중심으로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자연의 의미에 대해 재분석 해보았다.
2. 이효석의 생애
1907년 2월 23일에 강원도 평창군 봉편면 창동리에서 이시후(李始厚)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친 이시후는 일찍이 신교육에 눈을 뜬 인물로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한동안 교편을 잡았고, 시를 쓰거나 벤자민 프랭클린 자서전의 편역을 포함하는 번안 저술을 출판한 적도 있다고 한다. 이효석의 모친은 충주 출신으로 성명이 알려지지 않았는데 효석이 5세쯤 되었을 때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효석 딸의 주장에 의하면 계모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이효석은 8세 때 벌써 집에서 40킬로쯤 떨어진 평창에서 하숙을 하며 보통학교를 다녔고, 이후 죽을 때까지 타향살이를 했다. 1920년 3월에 평창공립보통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이효석은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무시험 전형으로 입학했다. 5년간의 중등학교 시절 동안 그의 성적은 늘 우수했으며, 1925년에는 우등상을 받았다. 같은해에 경일고보를 졸업한 이효석은 경성제국대학에 입학했고 영어영문학을 전공했다. 이효석이 본격적으로 문단에 데뷔하게 된 것은 본과 2년생이던 1928년 7월 <조선지광>에 단편소설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면서 부터이다.
이효석은 창작 초기부터 당대의 지식인들을 사로잡고 있던 좌익 사상을 추종하고 있었고, 당대의 좌익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작품이 드러내는 좌익이념은 그에게 ‘동반자 작가’라는 호칭을 부여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는 <프레듀르>를 끝으로 좌경 사상이 본격적으로 실린 작품의 창작을 사실상 마감했다. 여기에는 작가 나름의 내적동기와 함께 당대 좌익문학의 퇴조 - 카프 검거사태, 박영희의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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