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계획] 가회동에 대하여
- 최초 등록일
- 2008.03.20
- 최종 저작일
- 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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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가회동에 대한 도시계획적 레포트입니다.
목차
I . 서 론
1. 가회동 소개
2. 가회동 역사
(1) 조선시대
(2) 일제시대
(3) 해방이후
3. 가회동 현황
(1) 도시계획의 용도지역지구
(2) 도시계획시설
(3) 역사문화미관지구 건축규제
(4) 토지이용현황
Ⅱ . 본 론
1. 가회동 문제점
(1) 무분별한 건축으로 인한 건물의 부조화
(2) 좁은 도로 폭과 일조권에 대한 피해
(3) 한옥등록 대상 및 등록범위의 문제
(4) 주민의 참여 미비
(5) 정부의 무성의
2. 가회동의 개선방안
(1) 장기적인 계획의 수립 필요
(2) 관광지역으로서의 발전
(3) 한옥밀집지구의 장소 상품화하여 이미지를 구축
(4) 여러 가지 가능성에서의 환경조건을 가진 숙박 지구 발전
(5) 전통문화 체험거리 조성
Ⅲ . 결 론
1. 느낀점
2. 참고문헌
본문내용
I . 서 론
1. 가회동 소개
가회동지역은 조선시대 한양 도성 내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와 위치를 점했던 경복궁과 창덕궁의 두 궁궐사이의 지역으로서 두 궁궐을 포함한 이 지역의 이미지는 오늘날에도 서울에서 어느 정도는 고상하고 고풍스럽다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도시보전의 대상이 되는 (면적645,500㎡) 종로구 가회동외 10개 동의 일원은 남으로는 율곡로로 한정되고 동/서로는 경복궁, 창덕궁으로 한정되며 북으로는 삼청공원과 낙산으로 이어지는 북한산줄기로 한정된다. 남측의 율곡로 너머로는 인사동, 수송동, 낙원동등이 연속되며 강북도심으로 연결되고 있다. 정독도서관과 중앙고등학교 사이, 응봉 남쪽 기슭의 경복궁과 창덕궁, 종묘의 사이에 위치한 지역으로 서울 600년 역사와 함께 해온 전통 거주지역이며, 동 이름은 조선시대의 명칭인 가회방(嘉會坊)에서 유래한다. 가회란 기쁘고 즐거운 모임을 말하는데 본래 이 동이 북부 가회방 지역이므로 방 이름을 따서 동 이름을 지었다.
2. 가회동역사
(1) 조선시대
서울의 최상지는 경복궁이고 다음이 창덕궁이다. 또한 이 궁궐을 연결하는 선상의 지역, 북악과 응봉을 연결하는 산줄기의 남쪽 기슭에서 현 율곡로 좌우측 일대는 주거입지의 최길지(最吉地)였으며, 이 지역은 이른바 북고남저로서 겨울에 따뜻하고 배수가 잘 될 뿐 아니라 남쪽은 넓게 트인 데다 안산(案山)인 남산의 전망도 좋아 정침(正寢)이나 사랑(斜廊)이 항상 남면(南面)할 수 있는 이점도 지녀 이 일대에 그 때마다의 권문세가들이 모였었다. 이것이 곧 서울에 있어서의 북촌(北村)의 형성이다.
(2) 일제시대
1919년을 전후하여 계층분화와 함께 학구열이 높아지고 지방의 유학생이 서울로 보이게 되고 한편으로는 일본인들이 대량으로 이주하여 왔으며 1930년대 일본이 우리나라에 전쟁무기 생산을 위한 공업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대도시 인구의 팽창으로 주택이 부족해짐에 따라 새로운 도시건설 내지 도시내부구조의 재편성이 불가피하게 된다.
도시화과정에서 큰 주택들이 헐리고 여러 체의 작은 한옥 즉 개량주택이 들어서고 한옥지구인 북촌을 중심으로 한국인 거주지역이 형성되었으며 일제가 남촌위주의 개발로 종로의 상업기반이 잠식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