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봉건제도
- 최초 등록일
- 2008.03.23
- 최종 저작일
- 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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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서양중세의 봉건제도에 관한 리포트입니다.
목차
■ 봉건제의 개념
■ 봉건제의 형성
■ 봉건제의 구조 - 주군과 봉신의 관계
■ 일본의 봉건제도와 비교
■ 참고 도서
본문내용
■ 봉건제의 개념
봉건제(feudalism)는 봉토(fief)라는 말에 어원을 두고 있다. 여기서 봉토는 어떤 특정한 봉사에 대한 대가로서 주군으로부터 부여받은 토지를 의미하는데, 이때 특정한 봉사는 특수한 전문적 봉사, 특히 군사적 봉사를 의미한다. 이때 급여되는 토지는 영구적 소유권이 아니라 토지에 대한 수조권, 용익권 등을 조건부로 양도한다는 뜻이다. 서양 중세시대의 부는 기본적으로 토지 및 토지에서 얻어지는 생산물로부터 나왔다. 그렇기 때문에 봉토의 보유여부가 사회구조를 결정하게 되었다. 여기서 봉신과 주군의 관계, 즉 주군으로부터 봉토를 하사받고 이에 대한 대가로서 주군에게 봉사하는 봉건관계가 형성되었다.
게르만족 사회에서는 게르만 부족의 족장과 족장을 따르는 전사 집단 사이에 군사적 관계를 맺었다. 이것을 로마인들은 코미타투스(comitatus=종사제)라 불렀다. 또 로마제국 말기에는 무력한 토지 보유자가 유력자에게 자신의 토지를 양도한 후 그것을 다시 은대지의 형태로 되받아 경작하는 관습이 있었는데 이것을 은대지제(precarium)라 하였다. 봉건제에서 봉신과 주군과의 주종관계는 게르만족의 종사제에서 유래하며 봉사에 대한 대가로서 주군이 봉신에게 토지를 하사하는 방식은 로마의 은대지제에 기원을 두고 있다. 봉건제가 형성된 것은 프랑크 왕국의 메로빙 왕조 말기인데, 이때 게르만족의 종사제에 기원을 둔 주종제(vassalage)와 라틴 기원의 은대지제가 결합됨으로써 봉건제는 주군과 봉신 사이의 정치, 군사적인 충성 관계를 의미하게 되었다.
■ 봉건제의 형성
봉건제는 카롤링 왕조 말기에 제국이 붕괴되는 과정에서 나타났다. 제국이 분할되면서 작은 왕국들과 공국들이 생기는 등 내부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웠다. 이에 더해 9세기에 바이킹족, 마쟈르족과 이슬람 세력 등 이민족의 침입으로 왕권의 중앙 통제력이 더욱 약화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왕들은 이민족들로부터 위협받는 여러 지방들을 모두 완벽하게 보호할 힘이
참고 자료
구태훈,『일본역사 탐구』,태학사,2004
심재윤,『서양 중세사의 이해』,선인,2005
조세프R.스트레이어, 김동순, 중세시대의 서유럽』,성균관대학교출판부,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