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의 붕괴
- 최초 등록일
- 2008.04.05
- 최종 저작일
- 20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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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후한의 붕괴에 관한 레포트
목차
Ⅰ. 서론
Ⅱ. 후한의 건립과 통일
Ⅲ. 후한의 호족 정권
Ⅳ. 호족(豪族) 세력의 발전
Ⅴ. 외척과 환관
Ⅵ. 사회모순의 심화
Ⅶ. 청의와 당고
Ⅷ. 황건의 난
Ⅸ. 후한의 멸망
Ⅹ.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한(漢)은 진(秦)에 이어지는 중국의 통일왕조(BC 202~AD 220)로써 왕망(王莽)이 세운 신(8~22)나라에 의하여 잠시의 중단이 있었다. 그리하여 그 이전에 장안을 수도로 하였던 한을 전한(西漢), 낙양에 재건된 한을 후한(東漢)이라고 한다.
서기 25년 유수가 후한왕조를 세워 13세를 지속했지만, 184년 황건적의 난에 이은 전국적 군벌 혼전의 상황 속에서 후한의 통치는 기본적으로 붕괴하였고, 한 헌제(帝獻)는 동탁․조조에게 조종되는 정치 괴뢰가 되었다. 그러나 후한왕조의 수명은 22년(헌제 연강 원년)까지 계속되었고 정식으로 조비에 의해 교체되었다. 후한은 낙양에 도읍을 정하였는데, 그곳이 장안 동쪽에 있다 하여 동한이라고 칭하고, 또 전한을 이었다 하여 후한이라고도 칭한다. 196년간의 시기이다.
하나의 문명세계가 고도의 발전을 실현했을 때 그 통일적 세계에는 이미 깊은 균열이 파이게 되고 사회는 무수한 사권화 경향에 의하여 분해의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후한 역시 상향선을 긋고 있던 초기에 반해 2세기 이후에 이르면서 위기에 봉착하게 되고, 이는 결국 국가를 쇠망으로 밀어넣게 되었다.
이렇게 하나의 제국이 붕괴하게 된 가장 큰 주된 원인인 정치적 상황을 알아보고, 어떠한 내부적 모순으로 인해 후한이 멸망하게 되었는지 그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Ⅱ. 후한의 건립과 통일
후한의 창시자 광무제 유수는 남양 호족 출신으로, 전한(前漢)에 뒤이어 새로운 왕조 신(新A.D. 8~23)을 건국한 왕망 정권의 제도 개혁 실패와 잇따른 실정으로 도처에서 반란군이 일어나자 그도 한왕조 부흥이라는 깃발을 높이 들고 봉기하였다.
참고 자료
― 전락성 저․ 신승하 역, 『중국통사 上』, 우종사, 1981.
― 서윤달 외, 『중국통사』, 청년사, 1989.
― 이춘직, 『중국사서설』, 교보문고, 1991.
― 김철희, 「황건난의 고찰」『단사학보(창간호)』, 단국대학교, 1985 3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