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회의 성격론
- 최초 등록일
- 2008.04.12
- 최종 저작일
- 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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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사회의 대한 성격을 규정한 리포트입니니다.
목차
Ⅰ. 서론
1. 고려 사회의 성격
2. 고려 사회의 성격 논쟁
Ⅱ. 본론
1. 왕건의 등장과 통일
2. 고려 초기 왕권과 지방호족의 신분변화
3. 고려 초기 왕건의 왕권강화책
4. 음서제의 실시
5. 공음전의 실시
6. 고려 귀족제 사회설의 비판
7. 고려 관료제 사회설
8. 고려 관료제 사회설의 비판
Ⅲ. 결론
본문내용
1. 고려 사회의 성격
일반적으로, 고려 왕조는 귀족제 사회로 이해되고 있다. 즉, 고려 왕조는 가문, 문벌이 좋은 귀족들이 정권을 차지하고 국가를 운영하여 왔다고 생각한 때문이었다. 고려의 신분제는 작위제보다는 관리로 출사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었고, 작위제도 고위관료 및 유공신하에게 주어진 최고의 영예로서 기능함으로써, 고위관직을 지닌 작위 보유자를 거듭 배출할 경우 귀족적 혈통의 권위를 과시하는 수단이 될 수 있었다. 또한 귀족이란 용어는 연구자 간에 학문적 토론이나 합의를 거친 것도 아니었고, 고려의 귀족이 신라 또는 조선왕조와 비교하여 그 성격상의 특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은 채, 넓은 의미에서 지배층 = 귀족이라는 광범한 용어로서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2. 고려 사회의 성격 논쟁
그러나 1980년대 초에 이르러, 이에 대한 반론이 제기되었다. 과거 출신의 관료가 정치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였으므로, 고려 왕조는 귀족제 사회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관료제 사회로 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를 내세우는 사람들은 고려 왕조를 관료제 사회로 보는 근거로서, 공신의 후손들마저도 역시 과거제에 적응하고 있음을 밝히고, 한미한 가문의 자제들이 과거 급제로 문지(門地)를 세운 예를 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는 여러 가지 면에서 비판이 가해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과거는 결코 신분을 초월하여 실력에만 기준을 둔 관인 등용법이 아니라는 점과, 과거에 응시하는 신분층이 한정되어 있었다는 점이 지적될 수 있다. 또, 과거 급제자의 관리 임용, 승진에는 가문 관계가 크게 작용했음을 감안할 때, 고려의 과거제는 지배 신분층이 그들의 특권을 배타적으로 공유하는 하나의 방법 이었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고려 사회가 관료 사회가 아닌 귀족 사회라고 주장하는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논거로 내세우는 것은 음서제이다. 음서의 특권은 종래 특별한 경우 1 인 1자에 한해 가능했다고 파악하여 왔다. 그러나 근자의 연구에 의하면, 음서는 정기적, 향례적으로 시행되었으며, 1인 다
참고 자료
박용운,「고려시대사」일지사, 1988.
변태섭,「고려사의 제문제」삼영사, 1988.
정인지,「고려사」조선사회과학원, 1998.
허흥식,「고려의 문화전통과 사회사상」,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