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몽항쟁
- 최초 등록일
- 2008.04.12
- 최종 저작일
- 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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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대몽항쟁에 대한 리포트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몽고의 침입과 고려 조정의 대응
2. 일반 백성들의 대몽항쟁과 강화의 성립
3. 원간섭하의 고려와 그 대응
Ⅲ.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칭기즈칸이 고원을 통일한 후 직접적으로 타국을 공략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 이유는 고원유목민의 약탈경제를 스스로 고원 통일 이후 불식시키고 고원의 여러 씨족들을 통합했기 때문이었다. 물자가 부족한 고원에서 약탈 경제는 필연적인 것이었고 평화가 유지될 수 없음 또한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칭기즈칸이 고원을 통일하고 그러한 약탈을 금지하고 고원에 평화를 가져왔으므로 고원에는 물자가 부족할 수 밖에 없었고 칭기즈칸은 고원의 전투력을 바탕으로 대외전쟁을 수행할 수 밖에 없었다. 한 때 세계대륙을 섭권했던 몽고의 원나라, 그 중 끝까지 대항했던 몇 안 되었던 나라 중 하나의 고려. 고려와 몽골이 30년에 걸쳐서 싸운 대몽항쟁에 대해서 우리는 기존까지 세계의 여러 국가들을 힘 한번 들이지 않고 정복했던 몽골에 맞서서 대항했던 고려가 대단하지 않을 수가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계최강 몽골에 맞서서 싸운 비록 항복은 했지만 30년동안이나 싸웠던 고려. 고려와 몽고와의 전쟁과 몽고에 대한 조정의 대응 등을 살펴보자.
Ⅱ. 본론
1. 몽고의 침입과 고려 조정의 대응
13세기 초엽에 이르러 동아세아의 정국에 다시 파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몽고족이 새로이 흥기하여 거대한 세력을 형성했기 때문이었다. 몽고족은 원래 지금의 몽고평원에 자리잡고 있던 유목민족으로, 요․ 금 시대에는 그 지배를 받아 왔으나, 13세기 초두에 테무진이라는 영운이 나와 주변의 부족을 정복․ 통일하여 마침내 강대한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달성한 장본인인 태무진이 바로 1206년에 칸 즉 황제의 지위에 올라 몽고의 태조가 된 칭기스칸이었다. 당시 중국대륙의 남부에는 남송이 자리잡고, 북부 및 만주에 걸치는 지역은 여진족의 금이 지배하고 있었으며, 몽고의 서쪽에는 티벳죽의 일파인 당구트족의 사하가 있었다. 칭기스칸은 곧 이들 나라에 대한 정복사업을 전개하지마는, 고려도 그 파란에 흽쓸리게 되는 것이다.
칭기스칸은 먼저 서하를 쳐서 굴복시켰다. 그리고는 이어서 금나라의 정벌에 착수하거니와 여기서도 그는 순식간에 북부의 여러 성을 공략하고 수도인 서경을 위협하였으며 이에 금은 하는 수 없이 화의를 청하여 일시 난국을 모면하고 도읍을 더 남쪽의 개봉으로 옮기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와 같이 하여 금의 약체는 여지없이 드러나게 되었지만 그렇게 되자 이번에
참고 자료
박용운, 「고려시대사하」일지사. 1988.
김정한, 「삼별초」시와사회사, 1994.
김당택, 「원간섭하의 고려정치사」일조각,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