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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조의 당쟁(예송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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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등록일
2008.04.12
최종 저작일
2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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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현종조의 당쟁에 대한 레포트입니다.

목차

1. 기해예송
2. 명분론과 현실론 : 공의ㆍ사의 논쟁
3. 갑인예송
4. 송시열과 청풍 김씨 가문

본문내용

1. 기해예송
1659년 5월 4일 孝宗(1619~1659) 이 창덕궁 대조전에서 昇遐했다. 예조에서 국상 의례를 논의하게 됐는데, 이 때 仁祖(1595~1649)의 繼妃 慈懿大妃 趙氏의 상복이 문제가 되었다. 효종이 인조의 적장자였으면 논쟁의 여지가 없는 문제였다. 적장자라면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당연히 3년복을 입어야 한다. 그러나 효종은 인조의 둘째 아들로서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한 등급 내려 衆子服인 朞年服을 입어야 한다는 이론이 충분히 나올 수 있었다. 반면 왕실의 宗統을 이었으면 당연히 적통도 잇는 것이기 때문에 3년복이 타당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이와 같은 논의는 단순히 상복 문제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효종의 왕위 계승이 적법한가 그렇지 못한가 하는 문제와도 직결되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였다.
효종이 죽자 예조판서 尹絳(1597~1667)은 이 문제에 대해 대신들의 자문을 구했다. 왕세자는 영의정 鄭太和(1602~1673)를 비롯하여 예학의 대가인 金長生(1548~1631)의 제자였던 宋時烈(1607~1689), 宋浚吉(1606~1672) 등에게 자문을 구해보라 하였다. 정태화는 송시열과 의논한 뒤 古禮에는 이러한 사례가 없으니 『大明律』, 『經國大典』에 따라 장자ㆍ차자 구별 없이 朞年服을 입게 하자고 건의하고, 왕세자도 이를 허락했다. 그러나 이 소식을 접한 남인 학자 윤휴가 斬衰三年服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정태화는 이를 다시 송시열과 의논했다.
송시열은 『儀禮注疏』의 4종설, 즉 비록 왕위에 올랐어도 3년복을 입을 수 없는 4가지 이유를 들어 1년복을 주장했다. 4종설이란, ① 적자로서 병 때문에 왕위를 계승하지 못한 경우 ② 庶孫이 뒤를 이었을 경우 ③ 庶子가 뒤를 이었을 경우 ④ 嫡孫이 뒤를 이었을 경우에는 그 부모가 1년복을 입어야 한다는 것이다. 송시열은 그 중 효종은 ③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태화는 소현세자의 아들이 살아있는 마당에 그러한 예를 들었다가는 큰 일이 벌어진다고 하면서 이를 만류하고, 『경국대전』에 있는 대로 장자ㆍ차자 구별 없이 朞年服을 입는다는 규정을 적용할 것을 요청했다. 송시열 역시 『대명률』에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으니 朞年服으로 하자고 동의함으로써 복제를 확정했다.

참고 자료

- 이성무, 『조선시대 당쟁사』1, 아름다운날, 2007.
- 지두환, 「조선후기 예송논쟁의 성격과 의미」, 『동양학』24, 단국대학교부설동양학연구소, 1994.
- 최근덕, 「조선조 예송의 배경과 발단에 관한 연구」, 『동양철학』24, 동양철학연구회, 2001.
- 이희환, 「현종대의 기해예송」, 『역사학연구』29, 호남사학회, 2007.
- 이경희, 「효종의 종통문제와 현종대의 예송」, 전남대학교석사학위논문,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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