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기행문-하멜표류를 중심으로
- 최초 등록일
- 2008.04.20
- 최종 저작일
- 20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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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제주도 답사기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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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서론) 이번 답사 보고서는 제주도가 4면이 바다였기에 있을 수 있었던 일인 외국인의 표류의 의의와 무속신앙 발달 등을 주제로 하였다. 많은 답사지 중에서 이와 관련된 하멜표류기념비와 혼인지를 중심으로 보고서를 써나가려 한다.
제주도는 고대부터 해류, 또는 계절풍을 이용하여 서로의 교통이 빈번했던 곳이다. 그러한 증거로는 기타규우슈 지방에서 한국계의 석기가 발견된 것이나 한국계의 전설이나 풍속, 언어 등이 발견된 데에서 알 수 있다. 일본은 물론이고 외국과의 교섭이 남해를 거쳐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리하여 제주도 및 본토해안 지방에서는 일본 및 남양의 문화적 색채가 농후한 곳도 발견할 수 있다. 제주의 황해를 잘 들려다 보면, 한반도와 중국 본토, 만주의 세 지역에 둘러 싸여 있어 마치 내해 같은 역할을 한다. 한반도와의 교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현무암 토기가 육지에서 발견되고, 군곡리 토기가 제주에서 발견, 역으로 군곡리에서 제주도 토기가 발견되는 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고대에 있어서 해양은 간단한 배나 떼를 타고 이동하는데 매우 편리한 루트였다. 이러한 여건 때문에 제주는 지리적 이점으로 당과 왜의 상선들이 오가며 피항의 장소로 제주를 이용할 때, 제주는 이때 적지 않은 이익을 챙겼을 것이다. 이때 아마도 제주도는 해양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 재력을 추적하여 동아시아의 중심 해상 국가 이었을 것이다.
제주도는 무속 신앙이 발달했다. 제주도의 무속신앙은 지리적으로 섬이란 것이 많이 작용하였다. 아무래도 육지, 평야지대보다 살기가 척박하고 특히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러다 보니 철학적인 사색을 통한 신앙보다는 기복적인 것이 강하고 자연신에 대한 경배도 중시하게 된다. 제주도는 조선시대에는 유배지로, 근대에는 많은 큰 사건으로 인해 전체가 쑥대밭이 된 경우가 있다. 이렇듯 유배당한 사람들의 한, 바다에 나가서 죽는 사람들과 살아남는 사람들의 한, 국가의 탄압, 민초들의 봉기에 의한 대학살등 이런 시련들로 인해 힘든 그들에게 철학적인 사유를 통한 내면적 평화보다 당장 자신들의 생명을 의지할만한 무언가가 필요했고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무속 이었던 것이다
참고 자료
하멜의 표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