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중세 근대의 서양역사 - 서양의 세계사
- 최초 등록일
- 2008.05.01
- 최종 저작일
- 20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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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렇게 고대, 중세, 근대의 역사들을 살펴보면서 현재 나의 삶을 되돌아 보게 되었다. 서양의 세계사를 보면서 오늘이 있기까지 하나하나의 사건들을 통해, 많은 일들 가운데 현재의 나의 삶을 보게 되었던 것 같다. 또한 수업을 들으면서 서양인들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인간이 역사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고 나아가 역사를 어떻게 만들어 나가는지 알게 되는 좋은 기회가 된 것 같다.
목차
고대(기원전500년~서기500년)
* 자연에서 문화 ‧ 문명으로 : 로마법. 불평등의 구조화 12표법
중세(서기500년~1500년)
* 중세의 꿈과 현실, 그리고 근대의 여명 :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 유럽으로
근대(1500년~1950년)
* 진보와 갈등의 근 ‧ 현대 사회 : 노예의 노예, 라이베리아의 비극
* 참고문헌
본문내용
고대(기원전500년~서기500년)
* 자연에서 문화 ‧ 문명으로 : 로마법. 불평등의 구조화 12표법
로마의 역사를 보면 외부적으로 이민족에 대한 잔인한 전쟁과 가혹한 약탈의 연속이었고, 내부적으로는 노예제도와 시민 간의 빈부 격차 갈등이 구조화되어 있었다. 문명은 언제나 불평등을 전제로 한다. 그렇지만 그러한 갈등을 내부적으로 어떻게 흡수하느냐, 안정된 체제를 마련하느냐가 관건이다. 지금 로마의 역사에서 보고자 하는 것도 거대한 제국에서 일어나는 심각한 갈등을 법과 제도로 흡수하는 탁월한 능력이다.
로마는 초기에 에트루리아인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나 이민족의 지배를 벗어나면서 로마인들은 정치 체제 공화정을 만들어 냈다. 공화정은‘공공의 것’이라는 의미로서, 그 뜻은 왕 또는 황제 한 사람이 모든 권력을 다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로마 초기 정치 체제인 공화정은 결코 자유․민주적이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로마 공화정의 내막을 보면 조화와 균형은 표면적일 뿐이고 실제로는 귀족이 지배권을 장악하여 평민층의 권한을 압도하였다.
로마 공화정의 역사는 신분 갈등의 역사였다. 평민들의 저항은 사실 일찍부터 여러번 투쟁이 벌어졌다. 귀족들로서는 평민들의 위협이 심각한 문제였다. 쉽게 말해서 로마는 전쟁기계와 같은 집단이었다. 평민들은 조금씩 그들의 정치적 권리를 확대해 갔고, 귀족들은 자신들의 지배권을 완전히 놓치 않는 범위에서 평민들의 요구를 수용했다.
첫 출발이 12표법 이었다. 신분 사이의 갈등이 일어날 경우 귀족들의 이익만을 지켜질 것은 뻔한 일이었기에 평민들이 원한 것은 먼저 법의 내용을 확실하게 정하고 이를 문서화하는 것이었다. ‘로마 최초의 성문법 제정’로마의 국법이 되었다. 이 기본법을 영구히 보존하고 모든 사람들 앞에 공표한단 뜻으
참고 자료
주경철, 『문화로 읽는 세계사』, 사계절
민석홍, 『서양사개론』, 삼영사 1997
윤승준, 『하룻밤에 읽는 유럽사』, 랜덤하우스중앙,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