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후반 독일 사회의 발전
- 최초 등록일
- 2008.05.01
- 최종 저작일
- 20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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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9세기 후반 독일 사회의 발전을 빌헬름 2세 시대를 통해 살펴본 레포트 입니다.
목차
서론
1. 빌헬름 2세의 등장과 비스마르크의 퇴진
2. 빌헬름 2세의 국내외 정책
3. 빌헬름 2세의 독일 사회
4. 독일과 1차 세계대전
5. 빌헬름 2세에 대한 평가
본문내용
서론
1871년 독일제국의 통일은 당사자인 독일 이외에도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게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비스마르크라는 강력한 지도자의 지휘 아래 중부 유럽의 통일된 영토를 갖게 된 독일은 단기간에 전 유럽을 긴장시킬 만한 국가로 성장하게 된다. 이러한 독일 국력의 신장은 비스마르크시대 이후 빌헬름 2세가 집권하게 되면서 국외로 그 눈을 돌리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독일의 행보는 결국 유럽의 열강들이 우려했던 대로 전 유럽을 휩쓰는 전쟁인 세계 1차 대전으로 이어지게 된다.
우리는 이번 발표를 통해 통일 이후 급격한 국력의 신장을 가져온 독일 사회의 발전이 어떤 이유로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대해 살펴보고 독일사회의 발전이 유럽에 어떤 영향을 가져오게 되었는지에 대해 빌헬름 2세의 집권 시기를 중심으로 알아보도록 하겠다.
* 비스마르크 시대의 독일사회의 발전
빌헬름 2세 집권 시기 동안의 독일사회의 발전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는 그 바탕을 마련해 놓은 비스마르크 시대의 정책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비스마르크가 독일 사회의 발전에 미친 가장 큰 요인은 무엇보다 독일을 통일된 민족주의 국가의 형태로 바꿔놓았다는 점이다. 30년 전쟁 이래로 여러 개의 개별적 국가로 갈라진 상태로 존재해왔던 독일은 국력의 결집이 이뤄지기가 힘들었기에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침략과 신성로마제국 해체 이후 민족주의에 눈뜨게 되고, 관세동맹을 통한 경제적 통일이 밑바탕을 이루어 결국 비스마르크에 의해 정치적, 군사적인 통일 국가가 세워지게 된다.
이러한 독일의 통일은 특히나 경제와 군사 면에서 독일사회에 큰 발전을 가져오게 된다. 특히 경제력 면에서 18세기 후반에 까지 농업국가의 특성이 강했던 독일에서 정책적인 산업화를 추진하고 통일 화폐의 발행 및 연방들 간의 관세 폐지, 그리고 1879년에 제정한 보호관세법을 통해 당시 세계 최고의 산업국가였던 영국과 필적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는 단순한 경제력의 상승뿐 만이 아닌 독일 제국의 정치적인 결속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이러한 독일제국의 발전은 비스마르크 시대의 뒤를 잇는 빌헬름 2세에게 큰 힘이자 짐으로 작용하게 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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