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루이 14세와 몰리에르- 권력과 예술을 대변하다 -
Ⅰ. 서론
고대 · 중세 · 근대로 나누는 역사서술에서 우리는 쉽게 ‘절대왕정’, ‘고전주의’ 따위의 용어에 농락되곤 한다. 루이 14세의 ‘태양왕’이란 칭호는 ‘절대주의’ 시대에 유럽 맹주의 모습을 여실히 나타내는 듯하다. 베르사유 궁전에서 공연되었던 몰리에르의 연극은 ‘고전주의’의 영향을 받아 이성적(理性的) 대사와 행동만이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시대 구분의 개관식 역사서술에서 벗어나는 순간 ‘절대주의’, ‘태양왕’이란 칭호 뒤에 숨은 루이 14세의 개인적 고뇌와 예술에 대한 취향이 엿 보이고, 권력 아래의 예술에서 허우적대던 몰리에르 개인의 예술적 자존심이 드러난다.
루이 14세와 몰리에르의 관계는 보다 확대되어 권력과 예술이라는 미묘한 함수관계를 보여준다. 권력과 예술은 종종 융합하고, 깨어지기를 반복하지만 사실 예술보다는 권력이 위에 서는 경우가 많다. 이는 루이 14세가 명실상부한 태양왕이 되기 이전 몰리에르를 깊게 총애하다가 태양왕이 된 이후 몰리에르와 결별을 선언한 사실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예술이 권력에 종속되는 경우가 허다하다지만 몰리에르처럼 예술가 최후의 예술적 자존심은 지켜져 왔기에 지금의 예술이 존재 할 수 있는 것이다.
권력이 어떻게 존재하며, 예술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하는 질문은 역사 속에서 해결될 수 있다. 그리고 권력과 예술의 함수관계를 풀어보려 하는 노력이 권력과 예술이라는 궁극적 질문에 도달하는 길일 것이다. 그리고 권력과 예술을 보다 순수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며 역사에 있어서 결코 빼 놓을 수 없지만 체계화되기 어려운 부분을 구체화 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이에 결코 분리될 수 없었던 권력과 예술의 관계를 루이 14세와 몰리에르의 관계를 통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목차
Ⅰ. 서론Ⅱ. 루이 14세의 권력에 대한 욕심 - 프롱드 난과 마자랭의 섭정
Ⅲ. 몰리에르와 예술 - 권력과 예술의 결합
1. 베르사유 궁정의 생활
2. 몰리에르의 연극
3. 몰리에르의 코미디 발레
Ⅳ. 권력과 예술의 해체
1. 자유사상가 몰리에르와 루이 14세의 결별
2. 권력과 예술의 해체
Ⅴ. 결론
본문내용
Ⅲ. 몰리에르와 예술 - 권력과 예술의 결합1. 베르사유 궁정의 생활
루이 14세는 궁정에서의 일상생활을 유례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조직화했다. 궁정의 기능은 기본적으로 세 가지이다. 궁정은 왕의 생활공간이자, 왕과 귀족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사회적 공간인 동시에 정부가 위치한 곳이다. 왕과 귀족의 일상생활과 만남, 그리고 국사가 뒤엉킨 궁정은 권력에 의한 문화적 지배가 구현된 공간이다. (이영림,「태양-왕에서 인간-왕으로: 정치사의 부활과 루이 14세 연구」『서양사론』, 2005, p. 318.) 17세기 절대주의 귀족 궁정사회에서 왕과 귀족, 부르주아 사이의 절대주의적 궁정예절(civilite)이 형성된다. 절대적 왕에 의존하는 경쟁적 귀족들은 자신들을 상승하는 부르주아와 차별시키기 위해 `세련됨`을 자기 보호적 규제수단으로 삼았다. 따라서 고도로 세분화된 몸 관리 규범이 제도화됨으로써 몸이 궁정예절의 가치체계를 드러내는 핵심적 수단이 되었다. 특히 루이 14세의 베르사유 궁정은 "문명화의 온상이요 매너학교인 동시에 매너의 모델”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노버트 엘리아스와 그의 문명화 이론」, 1968, p.13. 재인용, 정옥희, 「궁정사회 사교춤에 나타나는 문명화 과정에 대한 연구」『무용예술학연구』, 2007, p. 223.이었고, 루이 14세는 몸의 문명화 궁정사회의 귀족들은 평민들보다 자기완성을 위한 물질적, 시간적 여유가 더 많았기 때문에 다른 이들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평민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고 특별한 계층임을 강조하려는 욕구도 강하였다. 세련됨, 웅장함, 부드러움, 유쾌함 등의 신체 이미지가 추구되었으며, 그러한 이상적 신체 이미지의 중심은 루이 14세였다. 생시몽 공작의 회고록에 따르면 그는 "예절바르고 우아한 매너를 통행을 통해 이룩했으며, 그의 자세, 신체, 자연스럽고도 위엄 있는 우아함은 모든 귀족들의 선망이 되었다"고 한다. (정옥희,「궁정사회 사교춤에 나타나는 문명화 과정에 대한 연구」, 2004, p.230.) 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쳤다.
루이 14세 덕분에 파리와 베르사유는 세계의 중심이 되었다. 파리의 루브르는 본래 십자군의 주역이었던 존엄왕 필립에서부터 기사 왕이었던 프랑수아 1세까지 프랑스의 왕이 거주하던 궁전이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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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림,「태양-왕에서 인간-왕으로: 정치사의 부활과 루이 14세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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