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청산
- 최초 등록일
- 2008.05.19
- 최종 저작일
- 2008.04
- 3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독일과 한국의 과거사 청산 비교
목차
없음
본문내용
세계는 수 천 년의 시간을 거치면서 많은 전쟁들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분쟁들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제일 잔인하고 무서웠던 전쟁들이 20세기에 제1차 세계대전 후를 기준으로 벌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생각보다 크게 벌어지진 않았지만 이 전쟁은 훗날 제2차 세계대전의 가능성을 열어두었다는 점에서 큰 전쟁이라고 생각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영향은 아직도 가시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독일과 프랑스, 네덜란드, 일본, 한국 등 많은 나라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시기와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식민지 지배를 당한 시기가 비슷합니다. 하지만 그 뒤 전쟁이 끝난 후, 혹은 식민지 시대가 끝난 후 각 국에서 대처한 방식들은 매우 달랐습니다. 독일과 프랑스 네덜란드 등은 전쟁전범이나 친독 행적을 한 사람들한테는 매우 가혹하다 싶을 정도로 과거사 청산을 하였지만 우리나라는 아직도 과거사 청산을 하지 못하고 독립을 위해 희생 된 독립투사들은 제대로 대접을 받지도 못하는 상황 아직도 단재 신채호 선생님은 우리나라 국적에 포함되지 않고, 무국적자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님뿐만 아니라 이상룡, 홍범도, 김규식 등 300명의 독립투사들이 무국적자로 되어 있다. 이에 일제시대 때 독립투사의 재산들은 독립투사와 후손과의 연결고리를 찾지 못한다고 아직도 재산을 물려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에 독립투사의 자녀들은 아직도 정부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가난에 허덕이고 있지만, 그에 반해 친일 행적을 했던 대표적인 을사5적의 인물인 이완용과 그 외 다른 친일파들은 해방이 된 직후에도 정부의 중요 관직에 있었으며, 지금 후손들도 정부 중요 관직에 있거나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어 재산도 남부럽지 않게 많이 가지고 있는 편입니다. 이완용의 후손은 현재 서울대 총장으로 재직 중이며, 다른 친일파의 후손들도 정부 요직에 있다.
이 모든 일들이 해방 직후 과거사 청산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과거사 청산을 제대로 하지 않음으로써 일본은 가해국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게는 제대로 된 사과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가해국인 독일은 주위 나라에 사과를 하고, 배상도 하고, 친나치파들을 신속하게 처벌하여 과거사 청산을 제대로 하였습니다. 이제부터 독일이 과거사 청산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했는지 알아보고, 우리나라의 과거사 청산 문제가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또한 독일의 사례를 보고 배울 것은 없는지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독일의 과거청산은 처음으로 연합국이 1946년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나치 전범 재판은 역사상 처음으로 ‘반인륜 범죄’를 규정하고 24명의 나치 책임자들을 전범으로 처벌하였습니다. 이 재판은 전쟁 범죄의 책임을 국가가 아닌 개인에게 물음으로써 국제법 발전에 획기적으로 공헌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참고 자료
안병직(2005), 『세계의 과거사 청산: 역사와 기억』, 푸른역사,
네이버 백과사전 인용
민족문제 연구소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