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나라의 여왕- 소 서 노
- 최초 등록일
- 2008.05.29
- 최종 저작일
- 20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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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주몽>으로 잘 알려진 소서노에 대한 ppt입니다.
많은 참고 부탁드립니다.
목차
과제의 주인공으로 소서노를 선택한 이유
소서노의 인생 엿보기
역사기록에 나타나는 소서노
드라마 <주몽> 에서와의 차이점
소서노의 업적
오늘날, 소서노는 어떤 인물로 평가되는가
소서노가 없었다면 오늘날 한반도는 어떤 모습일까
현대의 여성이 소서노에게 배워야할 점
과제를 끝내며
본문내용
과제의 주인공으로 소서노를 선택한 이유
국민적 드라마로 불렸던 `주몽`의 방영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소서노`라는 인물은 일부 사학자들을 제외한 일반인에게는 아주 생소한 이름이었다. 우리 역시 `주몽` 방영 전에는 소서노라는 여걸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단순히 주몽의 아내라는 것 정도가 그녀에 대해 알고있는 전부였다.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소서노가 이렇게 대단한 인물이였나`하는 생각이 든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소서노는 알면 알수록 흥미로운 인물이다. 여성의 눈으로 보는 소서노, 기업가의 눈으로 보는 소서노, 정치가의 눈으로 보는 소서노. 현대인의 입장에서 보는 역사 속 인물 소서노의 인생은 놀라움과 존경심의 연속이다. 이번 과제를 하면서 시대의 여걸이었던 소서노에 대해 좀 더 깊게 이해하고 싶다.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여걸, 소서노에 대해 알아보겠다.
MBC드라마 주몽에서 소서노 소개글
소서노의 인생 엿보기
소서노는 졸본부여의 족장 연타취발의 딸이었다. 소서노는 처음에 우태에게 시집가서 아들 둘을 낳았는데 맏은 비류라 하였고 둘째는 온조라 하였다. 우태가 죽자 소서노는 졸본에서 과부로 지냈다. 뒤에 주몽이 부여에서 용납되지 못하자 전한 건소 2년(서기전 37) 봄 2월에 남쪽으로 도망하여 졸본에 이르러 도읍을 세우고 국호를 고구려라 하고, 소서노를 맞아들여 왕비로 삼았다. 주몽은 그녀가 나라를 창업하는 데 잘 도와주었기 때문에 그녀를 총애하고 대접하는 것이 특히 후하였고, 비류 등을 자기 자식처럼 대하였다.
주몽이 부여에 있을 때 예씨에게서 낳은 아들 유류가 오자 그를 태자로 삼았고, 왕위를 잇기에 이르렀다. 이에 비류가 동생 온조에게 말하였다.
“처음 대왕이 부여에서의 난을 피하여 이곳으로 도망하여 오자 우리 어머니께서 재산을 기울여 나라를 세우는 것을 도와 애쓰고 노력함이 많았다. 대왕이 세상을 떠나시고 나라가 유류에게 속하게 되었으니, 우리들은 그저 군더더기 살처럼 답답하게 여기에 남아 있는 것은 어머니를 모시고 남쪽으로 가서 땅을 택하여 따로 도읍을 세우는 것만 같지 못하다.”드디어 소서노는 비류와 온조를 대동한 무리를 거느리고 패수와 대수 두 강을 건너가 백제 건국을 이루어낸다. 이렇게 소서노는 고구려뿐만 아니라 백제 건국에도 그녀의 힘을 미쳤던 것이다.
역사기록에 나타나는 소서노
<삼국사기>의 ‘백제본기’ 중
주몽이 졸본에 도착하여 월군(越郡)의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여 두 아들을 낳았다.
시조 비류왕(沸流王)은 그 아버지는 우태(優台)로 북부여 왕(北夫餘王) 해부루(解夫婁)의 서손(庶孫)이었고, 어머니는 소서노(召西奴)로 졸본(卒本) 사람 연타발(延陀勃)의 딸이었다. 소서노는 처음에 우태에게 시집가서 아들 둘을 낳았는데 맏은 비류라 하였고 둘째는 온조라 하였다.
참고 자료
www.goguryo.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