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 전후의 신학인식의 전환
- 최초 등록일
- 2008.06.02
- 최종 저작일
- 2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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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신학인식의 원리질문에 있어서 칸트 전 후로 개신교 신학 내부의 “pro me”가 담당했던 이해와 역할과 비교하는 레포트
목차
Ⅰ. “pro me”의 신학적·학문적 의미 사용에 대한 근본적 변화
Ⅱ. “pro me”의 성서적-종교개혁적 의미
Ⅲ. “pro me”를 신학에서 방법적 원리로 오용과 비판
Ⅳ. 결론
본문내용
루터로부터 시작된 종교개혁은 중세 기독교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계기가 되었다. 이때부터 시작된 신학적 논쟁, 특히 칭의론에 관한 교리의 논쟁은 아직도 계속 논의되고 있다. 이 칭의론은 루터를 출발로 하여 많은 신학자들이 그 교리를 발전시켜 강화하였다. 하지만 계몽주의를 지나면서 종교개혁적 정신은 점점 쇠퇴하게 된다. 그로 인해 종교개혁적인 칭의론의 의미가 변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 계기의 중심은 칸트 사상의 영향에 의해 많은 신학자들이 그 사상을 받아 들여 칭의론을 연구하였다. 그래서 루터의 종교개혁적인 칭의론의 의미인 “나를 위해, pro me”의 신학적 의미와 역할이 달라졌다.
이 글은 신학인식의 원리질문에 있어서 본래적인 주제를 설정하고, 이를 위해 칸트 전 후로 개신교 신학 내부의 “pro me”가 담당했던 이해와 역할을 보여주고 이를 서로 비교해 보고자 한다.
Ⅰ. “pro me”의 신학적·학문적 의미 사용에 대한 근본적 변화
종교개혁적인 “pro me”는 “우리의 죄 됨을 위하여 죽으시고 우리의 의를 위하여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불가분리적으로 귀속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참고 자료
칸트, 이성 한계내의 종교
이반트, 대담기고문, ThLZ 79(1954) 453-4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