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왕의 여자들(왕비,후궁,궁녀,의녀)
- 최초 등록일
- 2008.06.12
- 최종 저작일
- 20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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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시대 왕의 여자들에대한 왕비, 후궁, 궁녀, 의녀들의 당시 삶의 모습에 대한 레포트 입니다.
목차
Ⅰ. 서론··········································································p.1
Ⅱ. 왕의 아내, 왕비·······················································p.1-7
1. 명칭
2. 의무와 권한
3. 궁중 생활
Ⅲ. 궁궐의 그림자, 궁녀···············································P.7-11
1. 조선시대의 궁녀 조직과 규모
2. 궁녀의 범주와 명칭
3. 여관의 소임과 직분에 따른 호칭
Ⅳ. 조선시대의 여자 의사, 의녀···································p.11-12
1. 조선시대 의녀의 탄생
2. 의녀의 임무와 역할
Ⅴ. 결론·········································································p.13
본문내용
Ⅰ. 서론
최근 여풍(女風)이 거세다. 올해 신임 법관96명 가운데 76%인 67명이 여성이다. 지난해 는 전체의 48%인 47명이 여성이었다. 남성의 고유 영역으로 여겨졌던 법조계까지 여풍이 뻗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최근에는 남편이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남성 전업주부의 수도 급격히 증가했으며 이제는 ‘역차별’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사용되는 사회가 되었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의 여성의 위치는 하루가 다르게 신장되고 있고 여성을 인식하는 관점에 있어서도 조선시대의 가부장적이었던 시각에서 많이 탈피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과거의 사실을 기록해 놓은 역사 속에 여성은 얼마나 존재하는가. 역사 속에서의 여성은 언제나 특별한 경우로 치부될 뿐 대부분의 역사 속에는 대부분 남성만이 존재한다. 세상의 절반은 여자다. 이는 인간이 처음 출현 했을 때부터 변하지 않는 진실이다. 그런데 과거의 사실을 기록해 놓은 역사가 남자들만의 사건 혹은 사실들을 기록해 놓았다면 그것은 참된 의미의 역사가 아닐 것이다. 특히 가부장적 논리를 중시하는 성리학적 사상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던 조선시대의 역사 속에는 여성이 설 자리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조선역사에 있어서 주류가 아니었던 여성, 특히 조선 역사의 대부분 이라고 할 정도로 엄청난 영향력을 가졌던 왕과 함께했던 여성들에 대해 연구해보고자 한다.
Ⅱ. 왕의 아내, 왕비
1. 명칭
왕의 아내, 즉, 왕비에 대한 칭호에 대한 절대적 원칙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선 치세 내내 다양한 명칭으로 왕비를 지칭했다. 조선 초기에는 태조의 비를 현비, 태종의 비를 정비, 세종의 비를 공비라 하여 이름을 주었다. 왕의 배필을 ‘왕비’라고 호칭하자고 세종이 세종 9년에 건의했으나, 그 후에도 계속 왕비를 공비, 혹은 중국이라고 칭했다. 이후 세종 14년에 가서 왕의 배필을 ‘왕비’로 호칭하기로 결정되었고, 16년에 세종이 또 한번 신하들이 입조할 때에 쓰는 공식정인 호칭을 ‘왕비’로 하라고 했다. 중종 치세에는 중궁 외에 중전이라고도 칭하여, 문정을 중전이라 한 것이 보이는데, 중전이란 칭호가 그 후 계속 사용되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