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呂太后에 관한 司馬遷의 評價
-《史記》를 중심으로-
목차
序論
呂雉는 어떠한 사람이었는가?
功臣熟淸에 앞장선 황후
人體事件을 일으킨 惡女
呂氏 가문의 등용으로 漢나라를 어지럽힌 여인
司馬遷이 呂太后를 本紀에 넣은 까닭은?
結論
본문내용
1. 序論
오늘날은 女權의 힘이 세지면서, 흔히 兩性平等의 時代라고들 한다. 우리들이 잘 알 수 있는 政治家를 예로 들자면, 우리나라의 박근혜 의원부터 시작하여 美國의 클린턴 로댐 힐러리 까지 그녀들은 國家를 움직이는 實際的인 힘에 한 몫을 함으로써 女性 政治家로 대표 되고 있는 女性들이다.
이렇게 女權이 강한 오늘날에, 東洋의 中心 國家였고, 다시금 中心國家로 浮上하고 있는 中國의 女性 權力者들을 살펴 보면, 가장 가까운 時代에 살았던 마오쩌둥의 夫人인 장칭이 있었고, 淸나라의 西太后가 있었다. 이렇게 천천히 過去로 돌아가다 보면 ‘中國의 最初 女性 權力者는 누구였을까?’ 라는 궁금증을 누를 수 없게 되는데, 이에 대한 대부분의 사람들의 답변은 高宗의 皇后 였던 측전무후를 뽑을 것이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앞선 漢나라 시기에 女性 權力者가 存在 하였는데, 그녀가 바로 漢나라 呂后라고 불리어 지는 呂雉이다. 그래서 이 논문은 ‘天下 英雄 漢 고조 유방을 조종한 여걸’ 혹은, ‘無所不爲의 權力을 휘두른 殘酷한 女人’ 등으로 評價되는 그녀를, 『史記』 를 토대로 司馬遷이 呂雉를 어떻게 評價 敍述 하였는지 考察해보겠다.
2. 呂雉는 어떠한 사람이었는가?
呂雉가 歷史의 舞臺에 등장하는 것은 高祖와의 만남에서부터 이다. 高祖가 혼란을 平定하고 漢이라는 나라를 세우기 이전 時節에는 미천한 亭長 이었다. 하지만 觀相보기를 좋아하는 呂公의 눈에 들어 딸 呂雉를 夫人으로 삼게 되는데, 그녀가 훗날 孝惠帝와 魯元公主를 낳은 呂后이다. 이에 대한 사실은 『史記』 「高祖本紀」 에서 다음과 같이 볼 수 있다.
高祖는 관아의 모든 관리들을 깔보고 멸시했으며, 술과 여색을 좋아하여 항상 왕오와 무부의 주점에 가서 외상으로 술을 마셨으며, 술에 취하여 드러눕곤 하였다. 〔중략〕 여공은 “저는 어려서부터 관상보기를 좋아하여 많은 사람의 상을 보았지만, 당신만한 好相은 없었습니다. 그러하오니 자중하시길 바라며, 저에게 딸이 있는데 당신의 아내로 삼아주십시오”라고 말하였다.
참고 자료
사마천 지음, 정범진 외 역, 『史記 권9 여태후본기 제9』, 서울시, 2001
사마천 지음, 정범진 외 역, 『史記 권90 위표팽월열전 제30』, 서울시, 2001,
사마천 지음, 정범진 외 역, 『史記 권92 회음후열전 제32』, 서울시, 2001,
사식 지음, 김영수 역, 『황제들의 중국사』, 파주시, 돌베개,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