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주의와 몽고제국
- 최초 등록일
- 2008.06.30
- 최종 저작일
- 20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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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과연 유목민은 야만적이고 문명과는 거리가 먼 미개한 정복자에 불과했던 것인가? 그들이 그러하다면 어떻게 그렇게 넓은 영토의 제국을 장기간 운영할 수 있었단 말인가?
앞으로 전개될 이 글에서는 유목민의 역사, 그 중에서도 몽고제국에 대한 중화사상에 입각한 평가에 대한 반박과 몽고제국의 실상과 세계사에 미친 영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목차
1. 序
2. 本
1> 중국 역사 속에 끼워 맞춰진 유목민족
① 사마천과 반고의 서술
② 중화와 오랑캐의 구분의 근원
③ 小結
2> 몽고제국은 야만인가?
① 융합정책
② 은본위제와 지폐의 발달
③ 해상정책
④ 여성의 통합
⑤ 小結
3. 結
【 참고문헌 】
본문내용
1. 序
과거에 몽골제국과 징기스칸에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역사상 가장 큰 영토를 지닌 국가였으며 그들의 영토 확장에는 거칠 것이 없었다. 특히 다큐멘터리에서 언급했던 내용 중에 징기스칸의 군대가 페르시아를 정벌할 때는 말달리는 속도로 점령해 나갔다는 부분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가장 큰 영토와 가장 강한 전투력을 지녔던 몽고족의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평가는 그에 미치지 못하는 듯하다. 몽고족을 비롯한 유목 민족들은 야만적이며 문명과는 거리가 먼 미개한 종족으로 평가절하 되고 있으며, 그 들의 역사 마저 단지 힘으로 중국을 지배했던 이민족 정도로 평가되고 있다. 후대의 사람들이 평가하기에 역사적인 저술을 남기지 않은 문명은 잊혀지기 마련이다. 물론 역사서로 편찬하는 방법만이 전부는 아니지만 구전적 전승은 시간의 흐름과 비례해 정확성이나 신빙성이 떨어질 뿐 더러, 인쇄물과 같은 전파성을 가지기는 어렵다. 때문에 역사서를 편찬한 자들이 승자의 역사로서 기록되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역사인식을 형성해왔다.
과연 유목민은 야만적이고 문명과는 거리가 먼 미개한 정복자에 불과했던 것인가? 그들이 그러하다면 어떻게 그렇게 넓은 영토의 제국을 장기간 운영할 수 있었단 말인가?
앞으로 전개될 이 글에서는 유목민의 역사, 그 중에서도 몽고제국에 대한 중화사상에 입각한 평가에 대한 반박과 몽고제국의 실상과 세계사에 미친 영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2. 本
1> 중국 역사 속에 끼워 맞춰진 유목민족
① 사마천과 반고의 서술
피트 반 데 론은 중국 역사의 편찬이 세 단계를 거쳐 발전하였다는 진화적적 체계를 제시하였는데 사마천의 시대에 와서야 비로소 역사가 체계적으로 서술되기 시작했다는 주장을 했다. 중국이 만들어 낸 변방의 역사, 니콜라 디코스모,, 황금가지 339p
사마천의 시대는 중국을 한 제국이 통한한 시점으로, 정치적 의식통합과 그를 위한 방법으로서 역사적 지식을 더 조직화시킬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이에 사마천은 ‘사기’라는 역사서를 저술하였고, 그의 뒤를 이은 반고는 ‘한서’를 저술하였다. ‘사기’에는 중국 북방 유목
참고 자료
라시드 아 딘의 집사2, 라시드 앗 딘, 김호동 역주, 사계절
유목민이 본 세계사, 스기야마 마사아키, 이진복 옮김, 학민사,
바람에 새겨진 역사, 유목민이야기, 김종래, 자우출판
몽골세계제국, 스기야마 마사아키,임대희 외, 신서원
전통시대 동아시아 세계질서, 김한규, 소나무
중국이 만들어 낸 변방의 역사, 니콜라 디코스모,, 황금가지
징기스칸의 리더쉽 혁명, 김종래, CR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