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의 자원과 문화-그리고 오랜전통
- 최초 등록일
- 2008.06.30
- 최종 저작일
- 20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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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글은 필리핀의 자원과 문화, 그리고 오랜 전통에 관해 쓴 글입니다. 마젤란과 필리핀의 역사, 스페인의 지배와 필리핀, 필리핀의 섬과 자연, 아에타족과 민족, 필리핀의 언어, 막사이사이와 정치 경제, 마르코스와 이멜다, 에스트라다 대통령[Estrada, Joseph Ejercito, 1937.4.19~ ], 필리핀의 외교, 군사, 산업과 경제, 에스파냐와 미국의 식민지 지배체제, 갈레르모 톨렌티노와 필리핀의 문화, 필리핀의 과학기술, 외교 정책과 우리나라와의 관계에 관한 글인데 논문이나 레포트 쓰실 때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목차
1. 마젤란과 필리핀의 역사
2. 스페인의 지배와 필리핀
3. 필리핀의 섬과 자연
4. 아에타족과 민족
5. 필리핀의 언어
6. 막사이사이와 정치 경제
7. 마르코스와 이멜다
8. 에스트라다 대통령[Estrada, Joseph Ejercito, 1937.4.19~ ]
9. 필리핀의 외교,군사
10. 산업과 경제
11. 에스파냐와 미국의 식민지 지배체제
12. 갈레르모 톨렌티노와 필리핀의 문화
13. 필리핀의 과학기술
14. 외교 정책과 우리나라와의 관계
본문내용
1. 마젤란과 필리핀의 역사
외세에 의해 오랜 동안 지배를 받았던 필리핀은 그 역사적 굴곡의 수만큼 섬도 많다. 그래서 필리핀 사람들은 그러한 습성에 의해 다른 민족도 쉽게 동화되기도 한다. 세계일주에 나선 마젤란이 세부섬[島]에 도달한 것은 1521년의 일이었다. 이를 계기로 에스파냐는 필리핀 정복에 착수하여 1565년부터 시작된 레가스피의 평정활동으로 목적을 달성하였다. 그 당시의 원주민 사회는 ‘다투(datu)’라고 불리는 우두머리와 그 가족, 자유민(평민), 예속민의 3계급으로 구성된 바랑가이(barangay : 부족)를 단위로 상호 고립적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급적 경제를 유지하고 원시적 애니미즘을 믿는 단계에 머물러 있었으며, 통일이 안 된 데다 문화수준이 뒤떨어져 에스파냐의 정복을 한층 수월하게 만들었다. 이후 필리핀의 사회구조는 에스파냐 사람들에 의하여 다시 편성되었다. 로마가톨릭의 전도·개종과 아울러 전 국토에는 교구교회와 행정관청을 가진 소도시를 단위로 한 지배체제가 구축되었다. 종래의 바랑가이 우두머리는 이 조직의 지배 기구에 편입되어 세금을 납부하고 부역을 제공할 책임을 맡음으로써 에스파냐 지배자들과 원주민 사이의 중간 지배층을 형성하였다. 에스파냐의 중상주의적 식민지정책은 필리핀의 장기적인 경제 발전을 어렵게 만들었고, 주민들은 지배자들의 생활을 지탱해 주는 세금이나 부역을 제공하는 일 이외에는 예나 다름없이 자급적 생산만을 계속하였다. 에스파냐의 주된 경제 활동이었던 ‘갤리언(큰 범선) 무역(마닐라와 멕시코의 아카풀코 사이에 행하여졌던 교역)’은 중국을 비롯한 동방의 산물과 신대륙 멕시코의 은화를 중계하는 데 그쳤을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무역에는 엄격한 제한이 따랐기 때문에 현지의 경제활동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갤리언 무역이 벽에 부딪침에 따라 19세기 초에는 자유무역 정책이 채택되고 1834년에는 마닐라항(港)이 정식으로 개항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