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고분변천과 무령왕릉의 출토유물
- 최초 등록일
- 2008.07.04
- 최종 저작일
- 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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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백제 고분의 변천
1) 한성백제
2) 웅진백제
3) 사비백제
3. 무령왕릉의 출토유물의 종류
4. 결론
본문내용
1. 들어가며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백제의 역사는 B.C.18년 온조가 고구려에서 내려와 위례성에 터를 잡고 나라를 세움으로써 시작했다. 이후 백제는 두 번의 천도를 거쳐 A.D.660년에 멸망하기까지 타국과의 교류를 통해 그들만의 문화를 발전시켜나갔다.
고분문화는 전통성과 보수성이 강한 문화이다. 따라서 고분문화를 통해서 그 국가의 구성원이 어디에서 기원했는지, 또 어떠한 사상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 추측해 볼 수 있다. 여기에서는 백제 고분의 시대별 변천과정을 통해 백제의 건국세력 및 외국과의 교류를 짐작해보고, 무령왕릉의 출토유물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2. 백제 고분의 변천
백제의 묘제(墓制)는 유형이나 내용이 매우 다양한데 이는 백제 역사 진행의 특수성과 관련이 있다. 백제는 건국 이후 2번 수도를 옮기게 되고, 이에 따라 묘제의 형태가 바뀌게 된다. 초기 한성백제 시기에는 고구려의 영향으로 고구려의 고분과 유사한 형태를 보이며, 웅진으로 천도한 후에는 대외관계의 증대로 남조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후에 사비로 천도한 후에 또다시 묘제의 변화를 보인다.
1) 한성백제기(B.C. 18~A.D.475)
한성은 백제가 세워진 후 약 500년간 백제의 수도였던 곳이다. 고구려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이 시기는 묘제에서도 고구려와 유사한 형태를 보인다. 돌무지무덤(적석총, 積石塚)이 대표적인 예이다. 물론 한성백제의 묘제가 돌무지무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초기는 백제가 등장한 초반부로, 구체적으로는 기원전 3세기까지의 기간이다. 이때는 아직 돌무지무덤이 나타나지 않았고 토광묘(土壙墓) 땅에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시신을 안치하는 묘제. 토광내의 시설에 따라 순수 토광묘 ․ 목관(木棺) 토광묘 ․ 목곽 목관 (木槨木棺)토광묘로 구분된다.
계열과 옹관묘(甕棺墓) 매장시설로 항아리를 사용한 묘제. 청동기시대에서 비롯되어 삼국시대까지 사용되었다.
계열 등만이 확인된다. 이런 묘제는 백제뿐만 아니라 삼한 혹은 원삼국기의 묘제에서도 확인된다.
참고 자료
강인구, 『백제고분연구』, 학생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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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영, 『고대 동아시아 문명교류사의 빛, 무령왕릉』돌베개,2005
조유진, 『백제고분발굴이야기』,주류성, 2005
이남석,『백제 묘제의 연구』,서경출판사, 2002
이남석, 『백제의 고분문화』, 서경출판사,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