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와 사료의 차이점> 드라마 명성황후와 고종실록 등 역사 사료와의 차이점을 비교분석한다.
- 최초 등록일
- 2008.07.05
- 최종 저작일
- 2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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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요즘 사극들은 살펴보면 실제 역사적 사실과 전혀 다른 내용도 나오곤 합니다.
이에 시청자들은 실제 사실로 오인하기도 하는데요.
드라마는 픽션과 팩트의 종합인 팩션인 점으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일텐데요.
구체적으로 드라마 `명성황후`와 `고종실록` 등 역사 사료와의 차이점을 비교분석합니다
드라마와 역사 과목 학점:A
목차
1. 을미사변 정의와 그 시대 실제 정세
2. 명성황후 드라마와 고종실록, 을미사변 당시 궁으로 함께 들어간 일본인 기자 발언 차이점
3. 명성황후와 고종실록, 주한일본대사관 자료의 차이점 과 한계
본문내용
을미사변이란 1895년 대원군을 앞세워 일본 미우라를 중심으로 낭인들이 경복궁에 침입해 민비를 시해한 사건이다. 먼저 이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주변 국가들의 상황을 살펴보겠다. 을미사변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894년 동학농민 운동이 일어났고 일본과 청은 조선을 도운다고 하는 명분하에 한반도에 군대를 파견했다. 이는 청과 일본의 대립을 불러일으켰고 청일전쟁이 발발하여 일본이 승리하였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일본이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고 1985년 4월에 청과 일 사이의 시모노세키 조약이 맺어졌다. 이 조약의 내용은 ‘청은 조선의 독립을 인정하고 요동반도를 일본에게 할당한다.’이었는데 이는 일본이 조선을 보호국화 하고 나아가 만주지역 진출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시기에 남진 정책을 추진 중이었던 러시아는 이에 불리함을 느끼고 프랑스, 독일, 러시아의 삼국간섭을 통해 일본에게 제동을 걸었다. 이에 민비는 러시아와 연대하여 일본을 막고자 하였고 이 때문에 일본이 수세에 몰리자 친러세력인 민비를 시해하자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이제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일어난 을미사변에 대해 고종 실록 등 여러 사료와 ‘명성왕후’라는 드라마의 내용을 살펴보고 비교 분석해보겠다. 비교하기 전에 간과해서는 안 될 한 가지는 고종 실록은 일제시대에 쓰여졌기 때문에 실제 사건을 일본인 관점에서 유리하게 써서 사실이 왜곡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우선 을미사변의 원인에 대해 사료와 드라마 내용에 차이가 보인다. 고종 실록에는 을미사변에 대한 내용이 ‘묘시에 왕후가 곤녕합에서 분사하였다.’는 단 한 줄로 기술되어있다. 이 내용의 주에는 이 사건의 원인은 훈련대를 해산하라는 국왕의 밀지를 군무대신이 미우라에게 알리고, 이를 알게된 알게된 훈련대 병정들이 반발하며 대원군을 앞세워 대궐로 들어왔고 일본군은 이에 뒤따라 들어온 것이라고 되어있다. 또한 주한일본공사관기록에도 을미사변은 훈련대가 궁궐에 난입하여 일어난 일이란 것으로 언급되어 있다.
참고 자료
고종실록, 주한일본대사관 사료, 한국문화대백과사전의 을미사변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