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큐와 오키나와
- 최초 등록일
- 2008.07.06
- 최종 저작일
- 2008.05
- 4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할인쿠폰받기](/images/v4/document/ico_det_coupon.gif)
소개글
일본의 류큐와 오키나와 지역에 대한 역사적 고찰 레포트입니다.
목차
1. 명의 해금 정책과 류큐
2. 일본 안의 다른 나라 류큐
3. 근대 일본과 청, 조선, 류큐
4. 전후세계와 오키나와
본문내용
I. 명의 해금정책과 류큐
민간인이 해외로 도항하여 무역하는 것을 금지하는 정책을 `해금`이라고 한다. 명초의 대외관계는 조공제도, 조공무역 그리고 해금으로 구성되었다. 해금은 하해통번지금(바다로 나아가 외국과 통교하는 것을 금지함)의 약칭으로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명초의 해금령은 연안지역의 치안 유지를 목적으로 시행되었던 것으로, 국제무역을 규제할 의도는 없었다고 한다. 명초에는 송, 원이래 `시박사`에 의한 무역관리제도를 계승하고 있었는데 해금이 국제무역의 통제수단이 된 것은 1374년 이후의 일이었다. 1381년 명은 연해지역의 민중이 해외로 도항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해금령을 내리고 왜구와 결탁을 막기 위하여 어민의 출항도 금지시키는 등의 조치를 취하며 왜구대책을 강화하였다. 명의 해금은 연해지역의 치안 유지에서 조공시스템의 보완장치로 변질되어갔지만, 본래의 치안 유지책의 성격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해금, 조공시스템과 해방체제가 일체화하면서 강화되었다. 즉, 연해지역의 치안유지, 밀무역의 방지, 조공시스템의 보완적 역할 등의 다면적 기능이 있었다. 명대 중기까지는 해금은 조법(선조가 정한 법)으로서 유지되다가 16세기 이후 관헌의 기강이 무너지자 중국의 동남연해지역은 일종의 무정부상태가 되었다. 1567년 해금은 일부 완화되어 동남아시아 방면으로서 도항과 무역은 공인되었으나, 일본으로서 도항은 허용되지 않았다.
참고 자료
◦ 최광식,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살림, 2004.
◦ 이경덕, <역사와 문화로 보는 일본기행> 예담,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