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호 - 판소리 6마당
- 최초 등록일
- 2008.07.31
- 최종 저작일
- 20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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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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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춘향가
2. 심청가
3. 수궁가
4. 적벽가
5. 흥보가
6. 가루지기타령 (변강쇠가)
본문내용
판소리는 부채를 든 1명의 창자(唱者)가 고수의 북장단에 맞추어 창(소리)·아니리(사설)·발림(몸짓)을 섞어가며 이야기를 엮어가는 극적 음악이다. 또한 처음부터 끝이 있는 하나의 이야기 혹은 장소를 나타냄이란 의미를 가진 ‘판’과 인간이 목청으로 낼 수 있는 모든 소리의 의미를 가진‘소리’가 합쳐진 말로, 조선 후기에 굉장히 유행하였으며, 판소리의 형성·창작·개작등 모든 것에 감상층(판소리 향유층)이 참여할 수 있고, 또한 그 감상층이 사대부에서부터 천민에 이르기까지 광대하여 과히 ‘범국민적예술문학장르’라고 할 수 있다.
판소리를 정리한 사람들로는 송만재, 정노식 등이 있으나 신재효의 판소리 6마당에 대하여 알아보겠다. 우선 그에 앞서 신재효란 누군지 잠시 살펴보자.
신재효(申在孝)는 1812년 11월 6일에 생으로 그의 아버지 신광흡(申光洽)은 서울사람이었으나 고창현의 경주인 노릇을 했고 뒤에 그곳에서 관약방을 차려 크게 재산을 늘렸던 인물이다. 그런 집안 배경은 신재효로 하여금 뒷날 그 신분에 어울리지 않게 판소리에 지대한 관심과 지원을 아낌을 베풀 수 있는 조건이 되어 주었다. 그러나 왜 중인으로서 그가 열정과 재산을 바쳐가면서 판소리부흥에 매달렸는지 동기가 분명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단지 재산이 넉넉했던 중인이었으나 아직 신분상승의 뜻을 이룰 수 없던 그로서는 예술가로서의 길을 찾기로 마음을 다진 것처럼 보인다. 어떻게 보든 아직 광대나 판소리에 대한 인식이 보잘 것 없던 그때 판소리 중흥에 온 몸을 바친 것에서 그의 심미안과 선각자적 통찰력을 새삼 깨닫게 된다. 신분상승의 굴레를 극복하고 판소리 중흥의 기틀을 다진 그의 생애는 그 자체로 돋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공적을 몇 가지로 나누어 구체화시킬 수도 있다.
우선 노래 부르고 당대적 명창을 얻는다는 개인적 차원에서 벗어나 그 당시 이미 전성기에 들어선 판소리를 체계화하고 그 이론의 틀을 만들어 뒷 세대에 물려주려 애썼음을 잊을 수 없다. 둘째 광대들을 문하에 끌어들여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한편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했다. 남창만 존재하던 시절 진채선(陳彩仙)이나 허금파(許錦波)같은 여창을 발굴하고 길러낼 수 있었던 것은 개방적인 그의 안목이 아니면 생각하기 어려웠다. 셋째 직접 자신이 광대가를 비롯하여 14편의 단가를 짓는 등 나름의 창작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중구난방으로 떠돌던 판소리를 고르고 매만져 춘향가(남창 동창), 토별가, 심청가, 박타령, 적벽가, 변강쇠가 등의 6마당을 정착시키는데 힘을 기울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