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시] 시인 William Blake에 대해서
- 최초 등록일
- 2008.08.01
- 최종 저작일
- 20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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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영미시] 시인 William Blake에 대해서
목차
Ⅰ. William Blake`s Life
Ⅱ. Career
Ⅲ. Myth & Assessment
본문내용
Ⅰ. William Blake`s Life (1757-1827)
블레이크(William Blake)의 부친은 런던의 한 잡화상인이었다. 그가 유일하게 정식교육을 받은 것은 미술이었다. 그는 10세에 미술학교에 입학하였고 그후 왕립미술원 부속학교에서도 잠시 공부하였다. 14세 때부터 7년간 그는 유명한 조각가 제임스 버자이어(James Basire)의 도제가 되었는데, 자유시간에는 광범위하게 독서를 하였고 시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 24세에 그는 채소밭 주인의 딸 캐서린 바우처(Catherine Boucher)와 결혼하였다. 결혼할 당시에 그녀는 문맹자였으나 블레이크가 그녀에게 글을 가르쳐 주었고 또 자신이 조각하고 그리는 일도 거들도록 하였다. 초기에 나온 다소 감상적인 전기에는 케서린이 이단적이고 가난한 천재를 내조하는 이상적인 아내의 상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블레이크는 상당히 고달픈 남편이었음에 틀림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소유욕이 강하고 질투심이 강한 여성에 의해서 초래되는 고통에 대한 통렬한 공격은 아마도 가정불화가 일어났던 시절의 산물인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공격은 1793년에 이르러 절정에 다랬다.
그후 10년 동안 그의 작품에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들 사이에는 자녀가 없었다.
블레이크 부부는 한동안 블레이크가 회화교습도 하고 책에 삽화도 그리고 다른 화가들이 만든 밑그림을 동판으로 새기기도 하면서 꽤 넉넉하게 살았다. 그러나 일거리의 주문이 줄어들게 되자 블레이크는 1800년에 엉터리 시인이자 전기작가이며 아마추어 화가인 월리엄 헤이리(William Hayley)의 후원 아래 서섹스 해안의 펠펌(Felpham)에 있는 시골집으로 이사를 하였다. 헤일리는 자기 딴에 꾀를 내서 브레이크를 인습적인 화가 내지는 생계수단으로 변모시켜 보려고 하였다. 그러나 새장에 갇힌 독수리는 곧 반발하였다. 헤일리는 “ 내 육신의 친구인 체 굴고 있으나 내 영혼의 적이다”라고 블레이크는 기술했다.
1803년 펠펌에서 블레이크의 정신과 예술에 영원한 상흔을 남기게 되는 사건이 하나 발생하였다. 존 스코필드(John Schofield)라는 한 용기병 연대의 병사와 말다툼을 벌인 사건으로 자기 집 정원에 들어온 그 병사를 블레이크가 내쫓은 데서 비롯되었다. 그 병사가 블레이크 부부를 위협하면서 욕설로써 대꾸하자 블레이크는 그를50야드 떨러진 곳에 있던 그의 숙소까지 끌고갔던 것이다. 스코필드는 블레이크가 왕과 국가에 대해서 선동적인 발언을 했다고 고발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