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중세 문학
- 최초 등록일
- 2008.08.16
- 최종 저작일
- 2008.06
- 10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일본 중세문학을 요약한 글입니다.
목차
중세의 문학(개관)
시대배경
왕조회고와 신시대를 향한 눈
동란의 시대와 문학의 확대
본문내용
신고킨와카슈(新古今和歌集)
고토바인의 명에 의해 미나모토노미치토모(源通具), 후지와라노아리이에(藤原有家), 후지와라노사다이에(藤原定家), 후지와라노이에다카(藤原家隆), 후지와라노마사쓰네(藤原雅經), 쥬쿠렌(寂蓮) 등 6인이 1205년에 편찬. 고토바인 자신도 편집에 참여하였다. 고토바인은 수록한 노래의 증감을 반복하여, 죠큐(承久)의 변에 의해 오키섬에 유배된 후에도 개정을 계속하였다.
신고킨와카슈는 전20권으로 되어 있으며, 약 천2백수의 단가를 수록하고 있다. 당시 이미 사망했던 사이교(西行)를 제외하고는, 고토바인과 찬자들을 비롯, 지엔(慈円), 요시쓰네(良經), 도시나리(俊成), 쇼쿠시내친왕(式子內親王), 도시나리노무스메(俊成女), 구나이쿄(宮內卿) 등, 당대의 고토바인과 사다이에 주변의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들의 노래는 현실의 체험이 아니라 머리 속에서 만든 세계를 읊은 것이 대부분으로, 이는 ‘신고킨슈(新古今集)’의 큰 특징이다.
이들의 가풍은 정치적으로 무력해진 귀족들이 현실에 등을 돌리고, 오직 와카에서 아름다운 세계를 추구함으로써 초래되었다. 따라서 신고킨슈의 많은 노래는 정조적이고 아름다운 반면, 강한 힘이 부족하다고 할 것이다.
한편, 신고킨슈 시대 가인의 가론서로는, 도시나리의 ‘고라이후데이쇼(古來風抄)’, 사다이에의 ‘긴다이슈카(近代秀歌)’, ‘마이게쓰쇼(每月抄)’, 고토바인의 ‘고토바인고쿠덴(後鳥羽院御口)’, 쥰토쿠인(順德院)의 ‘야쿠모미쇼(八雲御抄)’, 가모노쵸메이의 ‘무묘쇼(無名抄)’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산가슈(山家集)
사이교(西行)의 歌集. 사이교는 신고킨슈 찬자들의 존경을 받아 신고킨슈에 실린 노래도 94수로 가장 많지만 이른바 신고킨슈의 가인은 아니다. 그는 인생의 대부분을 여행으로 보내고, 자연 속에서 사는 가운데 독자적인 가풍을 만들었다. 그의 많은 노래는 실제의 감동에 기반하여 읊은 것이며, 솔직하게 읊은 노래는 기교에 치우쳐 비현실적인 경향이 강했던 당시의 가단에서 오히려 존경을 받았다.
긴카이와카슈(金槐和歌集)
신고킨슈의 영향은 문화적으로 뒤져있던 히가시구니(東國)에도 미치게 되었다. 이를 접하고 와카에 심취하였던 이가 가마쿠라 막부의 3대 쇼오군 미나모토노사네토모(源實朝)이다. 그는 정치보다도 수도의 문화에 강한 관심을 가지고, 후지와라노사다이에의 지도를 받아 열심히 노래를 만들었다. 긴카이와카슈는 사네토모가 22세 때에 편찬한 가집으로, 습작적인 노래도 많지만 그의 뛰어난 천성을 느끼게 한다. 그의 가풍은 만요조(萬葉調, 萬葉集的인 가풍)라고도 한다.
신고킨슈(新古今集) 이후
후지와라노사다이에의 사후는 그의 아들 다메이에(爲家)가 가단의 지도자였다. 그러나 다메이에가 죽자, 토지상속을 둘러싼 다툼으로 가계도 가단도 니죠(二條), 교오고쿠(京極). 레이제이(冷泉)의 3파로 나뉘어지고 말았다. 니죠파가 평단(平淡)한 가풍을 존중하고 보수적인데 반해, 교오고쿠파는 혁신적이고 자유로은 가풍을 추구하였다. 레이제이파는 그 중간적인 가풍으로 보인다.
3파는 주도권을 둘러싸고 다툼을 벌이며, 13개의 칙찬집을 차례로 편찬하였다. 이것을 13대집(十三代集)이라고 한다. 그 중 교오고쿠다메카네(京極爲兼) 등 교오고쿠파 가인을 중심으로 한 ‘교쿠요와카슈(玉葉和歌集)’, ‘후우가와카슈(風雅和歌集)’는 청신한 감각의 서정가적 특색을 나타내는 훌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북조 무렵부터 와카는 승려나 무사를 중심으로 읊어지게 되었다. 이마가와료오슌(今川了俊)과 그 문하의 쇼오테쓰(正徹)가 대표적인 가인이다. 그러나 지방무사에게도 보급되는 한편, 고킨덴쥬(古今傳授) 등 형식주의로 흐른 와카는 생명력을 잃고 쇠퇴하여 갔다.
참고 자료
없음